나무 아래 앉아 울음을 퍼 담았지
시퍼렇게 질린 매미의 울음을
몸에 담고 또 담았지
이렇게 모아두어야
한결 요긴하게 울음을 꺼내 쓰지
어제는 안부가 닿지 않은 그대 생각에
한밤중 일어나 앉아 숨죽여 울었지
앞으로 울 일이 어디 하나, 둘일까
꾹꾹 울음을 눌러 담았지
아껴 울어야지
울어야 할 때는
일껏 섧게 오래 울어야지
이 시는 울음을 바가지로 물을 길어 올려 마음속 그릇에 차곡차곡 담아두는 심상을 그린다. 매미의 시끄러우면서도 서늘한 울음소리를 ‘시퍼렇게 질린’으로 형상화하며, 그것을 몸에 담는 행위는 단순한 슬픔의 발산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쌓아서 모아두는 것에 가깝다. 울음이 즉각적으로 흘러가 버리지 않도록 ‘모아두어야’ 한다는 말에는, 앞으로 맞닥뜨릴 더 큰 상실과 그리움의 순간에 대비하는 자각이 배어 있다.
시는 안부가 닿지 않은 누군가를 향한 그리움에서 비롯된 한밤의 울음을 기록한다. ‘앞으로 울 일이 어디 하나, 둘일까’라는 문장은 인생이 품은 수많은 슬픔의 가능성을 직시한다. 그래서 울음은 함부로 흘려보내기보다 ‘아껴 울어야지’라는 다짐으로 귀결된다. 울어야 할 때는 단단히 눌러둔 감정을 꺼내 ‘일껏 섧게 오래’ 울어야 한다는 태도에는, 슬픔마저 하나의 자원처럼 다루고자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이러한 의도는 지금의 울음을 좀 더 절제하고 그 슬픔을 이겨내려는 의지가 보인다.
결국 이 시는 감정 소비의 절제와 집중을 이야기한다. 감정이 쉽게 방출되는 시대에, 시인은 오히려 고통을 온전히 느끼고 기억하는 선택을 한다. 그것은 회피가 아니라, 가장 필요한 순간에 감정을 해방시켜 삶의 무게를 견디는 방식이다. 이를 일종의 ‘감정에 대한 시간 관리’라 부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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