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름한 겨울을 기록하는 대신
작은 틈을 내며 살았지 우리는
후회에도 순서가 있어서
한번 두번 세번 다시 한번 두번 세번
오늘 길어진 네 그림자가
어제 내가 그리워한 것에 닿아
다시 나란해지는 서로의 앞
– “앞으로 나란히” 박준
이 시는 마치 겨울 끝자락에 서 있는 기분이 든다. 바람은 차갑고 풍경은 허름하지만, 그 속에서도 사람은 작은 틈을 만들며 살아간다. 완전히 버티는 게 아니라, 그저 조금씩 숨 쉬며 살아낸다는 말에 힘들게 어렵게 사는 것 같아 마음이 짠해진다.
‘한번 두번 세번, 다시 한번 두번 세번’이라는 반복은 마치 내 안에서 되뇌는 후회의 목소리처럼 들린다. 한 번 후회했다고 끝나지 않고, 여러가지 후회되는 일이 몇 번이고 떠올라 나를 괴롭히는 모습. 하지만 동시에 그 반복 속에서 시간이 흘러간다는 것도 느껴진다.
그러다 시선이 오늘과 어제로 이어진다. 길어진 그림자가 어제의 그리움에 닿는 장면은 마치 시간이 둥글게 돌아 서로를 다시 이어주는 것처럼 다가온다. 결국 마지막 구절에서 두 사람은 다시 나란히 선다. 그 순간은 단순하지만, 긴 겨울을 건너 만나는 따뜻한 봄빛처럼 느껴진다.
후회를 극복하고 다시 나란히 선 모습.
이 시는 거창하지 않다. 오히려 일상의 작은 후회와 그리움, 그리고 다시 만나는 순간의 소박한 기쁨을 담았다. 그래서 읽는 내 자신도 후회 속에 가슴 졸였던, 그러다 다시 나란히 서 본 모습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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