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택수 “잊는 일”

2025년 10월 09일

꽃 피는 것도
잊는 일

꽃 지는 일도
잊는 일

나무 둥치에 파넣었으나
기억에도 없는 이름아

잊고 잊어
잇는 일

아슴아슴
있는 일

– 손택수 ‘잊는 일’

아슴아슴 [부사]
① 희미하여 분명하지 않은 모양.
② 기억이나 생각 따위가 또렷하지 않고 흐릿하게 떠오르는 모양.

이 시는 잊는다는 행위가 단순한 망각이 아니라, 오히려 삶을 이어가게 하는 ‘기억의 또 다른 형태’임을 들려주는 것 같다. 시는 짧지만 깊은 여운을 남긴다. 단어 하나하나가 시간의 발자국을 따라 느리게 스며든다.

‘꽃 피는 것도 잊는 일 / 꽃 지는 일도 잊는 일’이라는 첫 구절은 생의 순환을 담고 있다. 피고 지는 일조차, 결국은 잊음 속에서 반복된다는 인식이다. 잊는다는 것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기 위한 비움의 과정인 듯.

‘나무 둥치에 파넣었으나 / 기억에도 없는 이름아’에서는 과거의 어떤 존재를 떠올린다. 한때는 잊지 않기 위해 맹세하며 깊이 새겨 넣었던 이름. 이제는 그런 일조차 기억나지 않는 흐릿해진 이름. 마음의 표면에서만 가물거린다. 과거는 잊혀진다.

마지막 연에서 시인은 ‘잊음’을 ‘잇는 일’로 바꾼다. 잊는다는 것은 단절이 아니라 연결이라고 한다. 인간의 기억은 잊음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이어가며, 그 속에서 살아남는다. 잊는다는 것은 ‘기억에서 사라지는 일’이지만, 그 사라짐이야말로 다른 것과의 ‘이어짐’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이 가을에 꽃은 모두 떨어져서 잊혀지지만 내년 봄에 그 자리에 피는 새로운 꽃으로 이어진다는 순환의 의미이기도 하다.

우리도 기억 속에 모든 것을 다 품고 살 수 없다. 시간이 지나면 아픈 일, 사랑했던 사람, 부끄러운 순간들을 하나씩 놓아버리게 된다. 그런데 그 ‘잊음’ 덕분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다른 일들을 시작하고, 또다시 살아가게 된다. 즉, 잊음은 끊어내는 게 아니라 다음을 향해 나아가는 여백이 된다. 이런 생각을 확장하면, ‘잊는 일’은 부정적인 느낌이 아니라, 다시 살아가기 위한 긍정의 변형이라는 느낌도 든다. 그건 기억의 소멸이 아니라, 기억의 변주이자 재탄생이라 할까.

그러니 잊지 않겠다고 맹세하고 애쓰기보다, 잊음을 받아들이고 지금 내 앞에 있는 것들을 더욱 사랑하고 존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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