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섭 “마음”

2025년 12월 26일

마음

나의 마음은 고요한 물결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고
구름이 지나가도 그림자 지는 곳

돌을 던지는 사람
고기를 낚는 사람
노래를 부르는 사람

이리하여 이 물가 외로운 밤이면
별은 고요히 물위에 뜨고
숲은 말없이 물결을 채우나니
행여 백조가 오는 날
이 물가 어지러울까
나는 밤마다 꿈을 덮노라.

— 김광섭, 〈마음〉

김광섭 시인의 〈마음〉은 인간의 내면을 고요한 호수나 강물에 빗대어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시인은 자신의 마음을 단순히 단단한 실체가 아니라, 외부의 아주 작은 자극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액체 상태의 물로 정의한다. 바람이 불면 흔들리고 구름이 지나가면 그늘이 지는 모습은, 우리가 타인의 말 한마디나 주변 환경의 변화에 얼마나 쉽게 감정이 일렁이는지를 담담하게 보여준다.

중반부에서 등장하는 돌을 던지는 사람이나 고기를 낚는 사람들은 우리 삶에 개입하는 타자들을 의미한다.
그들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우리의 고요한 내면에 파장을 일으킨다. 하지만 시인은 그들을 원망하기보다, 그로 인해 생기는 외로움 속에서 오히려 별과 숲이라는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자신의 물결 위에 받아들인다. 고립된 외로움이 아니라 우주와 교감하는 깊은 정적으로 승화시키는 과정이 인상적이다.

특히 마지막 대목에서 백조가 올 것을 대비해 밤마다 꿈을 덮는다는 표현은 이 시의 백미다.
자신이 간절히 기다려온 순수하고 고결한 존재가 혹여나 자신의 어지러운 마음 때문에 발을 돌릴까 염려하는 마음이 지극히 서정적이다. 꿈을 펼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덮는다'는 행위를 통해, 소중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절제하고 평온을 유지하려는 숭고한 의지가 느껴진다. 흔들림을 인정하면서도 끝내 고요를 선택하는 시인의 자세가 독자의 마음마저 차분하게 가라앉혀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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