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思慕)
그대와 마주 앉으면
기인 밤도 짧고나
희미한 등불 아래
턱을 고이고
단 둘이서 나누는
말 없는 얘기
나의 안에서
다시 나를 안아주는
거룩한 광망
그대 모습은
운명보담 아름답고
크고 맑아라
물 들인 나무 잎새
달빛에 젖어
비인 뜰에 귀똘이와 함께 자는데
푸른 창가에
귀 기울이고
생각하는 사람 있어
밤은 차고나.
– 조지훈 –
기인 밤도 짧고나
희미한 등불 아래
턱을 고이고
단 둘이서 나누는
말 없는 얘기
나의 안에서
다시 나를 안아주는
거룩한 광망
그대 모습은
운명보담 아름답고
크고 맑아라
물 들인 나무 잎새
달빛에 젖어
비인 뜰에 귀똘이와 함께 자는데
푸른 창가에
귀 기울이고
생각하는 사람 있어
밤은 차고나.
– 조지훈 –
밤의 고요함 속에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그 자체로 하나의 풍경이 된다. 조지훈의 ‘사모’는 사랑하는 대상과 마주 앉아 나누는 무언의 교감을 정갈하고도 깊이 있게 그려낸다. 기나긴 밤조차 짧게 느껴질 만큼 그대와 함께하는 시간은 밀도가 높고, 희미한 등불 아래서 턱을 괴고 나누는 ‘말 없는 얘기’는 어떤 화려한 수사보다도 진실하게 다가온다.
시인은 그대의 존재를 단순히 시각적인 아름다움에 가두지 않는다. 나를 다시 안아주는 ‘거룩한 광망(光芒, ‘빛살’, ‘빛줄기’라는 뜻으로, 찬란히 퍼지는 빛)’이나 ‘운명보다 아름답고 맑은’ 모습으로 묘사하며, 사랑을 일종의 숭고한 종교적 체험이나 구원의 차원으로 승화시킨다. 이는 그대를 향한 마음이 찰나의 감정이 아니라 삶 전체를 관통하는 깊은 신뢰와 경외에 닿아 있음을 보여준다.
시의 후반부에서 시선은 밖으로 향한다. 달빛에 젖은 나뭇잎과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들리는 비어 있는 뜰은 차분한 가을밤의 정취를 더한다. 푸른 창가에 기댄 채 차가운 밤공기를 느끼며 누군가를 생각하는 사람의 뒷모습은 외롭기보다 오히려 충만해 보인다. 차가운 밤의 공기와 뜨거운 그리움이 교차하는 그 지점에서, 사랑은 비로소 완성되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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