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라는 이름의 기억
“La nation, comme l’individu,
est l’aboutissant d’un long passé d’efforts,
de sacrifices et de dévouements.”
국가는 개인과 마찬가지로
오랜 세월에 걸친 노력과 희생,
그리고 헌신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 에르네스트 르낭 (Ernest Renan) –
이 문장은 1882년 소르본(Sorbonne) 대학에서 행한 에르네스트 르낭(Ernest Renan)의 유명한 강연인 ‘민족이란 무엇인가(Qu’est-ce qu’une nation?)’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혈통이나 언어, 종교 같은 외적인 조건보다 ‘함께 살고자 하는 의지’와 ‘공통의 기억’을 민족의 핵심으로 보았다.
한 그루의 거목이 깊은 뿌리 없이 서 있을 수 없듯, 하나의 국가는 어제라는 이름의 수많은 비와 바람을 견뎌온 역사의 결실이다. 우리가 누리는 평화와 문화는 이름 모를 이들이 바친 땀방울과 눈물의 퇴적층 위에 세워진 신기루 같은 기적이다. 르낭은 국가를 단순히 지도 위의 경계선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거대한 감정의 흐름으로 이해했다.
개인이 자신의 성격과 정체성을 형성하기 위해 수만 번의 선택과 시련을 겪듯, 민족 또한 공통의 고난을 함께 이겨내며 하나의 영혼을 형성한다. 그것은 마치 오래된 성당의 벽돌 하나하나에 장인의 숨결이 깃들어 있는 것과 같다. 우리는 조상들이 남긴 헌신이라는 유산을 상속받은 상속자들이며, 그 기억의 온기를 나누어 가짐으로써 비로소 ‘우리’가 된다.
이 문장은 민족적 자부심을 고취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지만, 자칫 ‘과거의 신성화’에 빠질 위험이 있다. 과거의 희생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현재를 살아가는 개인의 자유보다 집단의 대의를 우선시하는 전체주의적 사고로 변질될 수 있다. 또한, ‘공통의 과거’라는 틀 안에 포함되지 않는 소수자나 이주민을 배척하는 논리로 쓰일 가능성이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민족은 고정된 유물이 아니라 매일매일의 선택으로 갱신되는 역동적인 합의여야 한다. 미국의 현재 상황은 ‘마가(MAGA: Make America Great Again)’로 대표되는 보수적 흐름은 과거의 영광과 전통적 희생을 강조하며 집단의 결속을 꾀한다. 그러나 이러한 서사가 지나치게 강조되면서, 르낭이 경계했듯 현재를 살아가는 다양한 개인의 권리나 변화된 시대상을 억누르는 전체주의적 압력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결국 지금의 미국은 과거의 헌신을 어떻게 ‘현재의 포용’으로 연결할 것인가라는 거대한 시험대에 올라 있다. 민족의 정체성이 고정된 유물이 아니라,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시민들이 매일같이 민주주의라는 광장에서 내리는 ‘역동적인 합의’일 때만 그 생명력이 유지될 수 있음을 미국 상황은 여실히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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