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재종 “첫사랑”

2026년 02월 03일

첫사랑

고재종

흔들리는 나뭇가지에 꽃 한번 피우려고 눈은 얼마나 많은 도전을 멈추지 않았으랴 싸그락 싸그락 두드려 보았겠지 난분분 난분분 춤추었겠지 미끄러지고 미끄러지길 수백 번, 바람 한 자락 불면 휙 날아갈 사랑을 위하여 햇솜 같은 마음을 다 퍼부어 준 다음에야 마침내 피워낸 저 황홀을 보아라 봄이면 가지는 그 한 번 덴 자리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상처를 터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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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종 시인의 ‘첫사랑’은 추운 겨울 나뭇가지 위에 쌓이는 눈꽃을 통해 사랑의 결실이 얼마나 치열한 노력 끝에 얻어지는지를 알려주는 시다. 흔들리는 가지 위에 눈꽃 한 송이를 피우기 위해 눈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없이 미끄러지고 다시 도전했을 과정을 ‘싸그락 싸그락’, ‘난분분 난분분’ 같은 생동감 넘치는 언어로 묘사한 대목이 참으로 인상적이다.

바람 한 점에도 쉽게 날아갈지 모를 위태로운 사랑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쏟아붓는 눈의 모습은 헌신적인 사랑 그 자체다. 그렇게 마침내 피워낸 ‘황홀’이 겨울의 끝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봄날 꽃망울이라는 ‘가장 아름다운 상처’로 다시 태어난다는 역설적인 표현은 깊은 감동을 준다. 아픔을 통과한 뒤에야 비로소 진정한 아름다움이 피어난다는 시인의 통찰이 우리의 가슴에 깊이 다가온다.

계속되는 강추위 속에서 나뭇가지에 얼어있는 작은 눈꽃을 다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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