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ACE OF EXISTENCE

“있는 것만으로 참는다.
뭔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그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나이를 먹어가며 얻게 되는 몇 안 되는 장점 중 하나다.”

– 무라카미 하루키(Murakami Haruki)
『달리기에 대해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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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장은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Murakami Haruki)가 자신의 달리기 인생과 문학적 여정을 결합해 쓴 에세이 『달리기에 대해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문학사상, 2009년) 132쪽에 담겨 있다. 젊은 날의 치열한 성취와 결핍을 지나, 중년에 접어든 작가가 자신의 육체적 쇠퇴와 삶의 한계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발견한 평온한 감사를 고백하는 대목이다.

젊음은 늘 ‘더 많은 것’과 ‘더 나은 것’을 갈구한다. 무언가가 결핍되어 있다는 사실에 괴로워하고, 채워지지 않는 욕망의 허기 속에서 자신을 소모하곤 한다. 하지만 세월의 강을 건너온 이에게 삶은 전혀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대단한 성과나 화려한 보상이 없더라도, 지금 이 순간 무언가가 내 곁에 존재한다는 그 물리적인 사실 하나만으로도 마음의 허기가 채워지는 지점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것은 지치지 않고 움직여주는 나의 다리일 수도 있고,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는 찻잔일 수도 있다. 존재 그 자체에 대한 경탄은 인생이라는 긴 마라톤을 완주해가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고요하고도 우아한 훈장이다.
그렇다고 현실 안주나 무기력함에 머무르는 것은 아니다. ‘있는 것만으로 고맙다’는 마음이 부조리한 현실을 개선하려는 의지나 성장을 향한 동력을 약화시키는 변명이 되어서도 안 된다. 이는 수동적인 태도가 아니라, 치열하게 살아온 자가 도달한 ‘존재의 수용’이라는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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