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 스즈키 유이

2026.03.06 | 댓글 0개

 책정보
  •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
  • 지은이: 스즈키 유이,이지수 (옮긴이)
  • 출판사: 리프
  • 발행일: 2025년11월18일
  • 원제 : ゲ-テはすべてを言った

1. 전체적인 감상

스즈키 유이의 소설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는 ‘괴테의 말’로 알려진 한 문장의 출처를 추적하는 이야기이다. 이 문장이 정말 괴테의 말인가를 따지는 과정 속에서, 말의 권위는 어디에서 생겨나는지, 우리는 왜 유명인의 이름이 붙은 문장 앞에서 쉽게 설득되는지, 그리고 타인의 언어를 빌려 자신의 감정과 삶을 설명하려는 태도가 얼마나 익숙한지를 생각하게 한다.

작품의 출발점이 되는 문장, “사랑은 모든 것을 혼동시키지 않고 혼연일체로 만든 다 Love does not confuse everything, but mixes.”는 말은 처음에는 아름답고 근사한 문장처럼 보인다. 그러나 소설은 이 문장을 둘러싼 주인공의 집착을 통해, 문장 그 자체의 내용보다 그 문장에 기대어 자신을 학문적 완성을 지탱하려는 인간의 욕망을 더 선명하게 느끼게 된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저마다 말을 붙들고 살아간다. 누군가는 학문적 권위로, 누군가는 교양으로, 누군가는 사랑의 언어로 자신을 설명하려 한다. 그런데 그 설명의 방식은 대체로 자신의 말이 아니라 이미 누군가가 해놓은 말, 이미 세상에서 권위를 획득한 말들에 기대어 있다. 괴테의 말, 문학의 말, 철학의 말, 사랑에 대한 오래된 격언들이 장면 곳곳에 끼어들면서 인물들은 점점 더 풍부해지기보다, 오히려 자기 자신의 언어를 잃어버린 채 떠도는 사람들처럼 보이기도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나는 이 작품이 흥미롭기도 했지만, 동시에 꽤 불편했다.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단편적으로 인용된 명언들과 대사들이 등장인물의 감정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인물이 지금 슬픈지, 불안한지, 분노하는지, 혹은 사랑하고 있는지를 따라가기보다, 지금 이 장면에서 작가가 어떤 문장과 어떤 교양적 기호를 배치하고 있는지를 먼저 의식하게 되었다. 감정은 서사의 결을 따라 천천히 스며들어야 하는데, 이 작품에서는 종종 인용문이 그 자리를 먼저 차지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예컨대 작품 속 문장들은 자주 의미심장한 얼굴로 등장한다. “말은 붓에 닿는 순간 죽어버린다”와 같은 표현은 그 자체로는 충분히 인상적이다. 그러나 그런 문장들이 인물의 내면과 삶의 구체적인 결을 통과하기보다, 먼저 문장으로서의 무게를 드러낼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인물의 감정에 다가가기보다 문장의 표면을 감상하게 된다. 문장은 살아 있는데 사람은 흐릿해지고, 말은 넘쳐나는데 정작 그 말을 하고 있는 인간의 감정은 잘 느껴지지 않는다.

특히 배경 설명이나 해석 없이 빈번하게 제시되는 여러 인용문은 내게 사유의 여지를 열어주기보다는, 때때로 작가의 지적 과시처럼 느껴졌다. 물론 이런 방식 자체가 의도일 수도 있다. 누군가의 이름이 붙은 문장이 얼마나 쉽게 권위를 획득하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작가는 오히려 그 권위의 언어들을 과잉으로 배치했는지도 모른다. 인물들이 자신의 언어가 아니라 남의 언어를 빌려 감정을 말하는 모습 자체가 이 소설의 핵심 주제일 수도 있다. 우리는 흔히 자기 감정을 자기 말로 설명하지 못하고, 누군가의 문장을 가져와 자신을 대신 말하게 한다. 사랑도, 상실도, 후회도, 존경도 내 말로 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미 누군가가 더 잘 정리해 둔 문장을 빌려온다. 이런 이유로 내가 가장 공감한 인물은 명언 사이트 ‘Tree of Words’를 운영하는 딸 노리카였다. 노리카는 “오래전부터 좋은 말이 뭔지 알고 싶어서… 시작했고”, 이어서 “그 말이 지금 나한테 도움이 되는지를 생각하기 시작했어”(p.201~202)라고 말한다. 나 역시 명언을 좋아하고, 수집해서, 웹사이트에 정리하고 있어서 나의 작업을 돌아보게 했다. 누가 말했다는 권위보다 지금의 나에게 어떤 힘을 주는가를 먼저 생각한다는 노리카의 태도는, 이 작품이 제기하는 수많은 철학적 질문들 가운데 내가 가장 수긍할 수 있는 답처럼 보였다.

그런 의미에서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는 단지 괴테를 말하는 소설이 아니라, 타인의 말을 통해서만 자신의 삶을 말할 수 있게 된 사람들에 대한 소설이라고 생각된다.


2. 주요문장

23 그 말은 장차 일본에서 괴테 전문가로 대성하리라는 뜻을 품고 있었던 당시의 도이치에게 묘하게 예언처럼 들렸고, 이윽고 귀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독일 사람은 말이야.” 요한이 말했다. “명언을 인용할 때 그게 누구의 말인지 모르거나 실은 본인이 생각해 낸 말일 때도 일단 ‘괴테가 말하기를’이라고 덧붙여 둬. 왜냐하면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거든.”
38~39 도이치의 온갖 생각, 힘, 행위의 소산일 말, 말, 말...... 그러나 그는 지금 그 안에서 새로운 생각이나 힘, 행위의 태동을 느낄 수 없었다. 어쩌면 일단 언어화된 생각이나 힘이나 행위는 핀으로 꽂아 표본 상자에 가지런히 넣어둔 나비처럼 두 번 다시 날갯짓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Das Wort erstirbt schon in der Feder(말은 붓에 닿는 순간 죽어버린다).” 아아, 또다. 결국 난 모든 것을 말로 표현하지 않고서는 못 견디는 거야. 나비는 꽃들 사이를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꽃가루를 옮기는 모습이 아름다운 건데. 하지만 태풍에는 반드시 눈이 있는 법. 모든 말은 실상 그 한 점을 향해 몰아칠 뿐이다. 말의 탁류에 휩쓸리며 도이치는 몸을 일으켜 그 정지된 점을 아리아드네의 실처럼 움켜쥐고, 뽑아냈다.Love does not confuse everything, but mixes. —Goethe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니 그 속에 늘어선 글자가 점점 떠오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작은 꼬리표 너머로 세계가 통째로 흐리게 보였다.

041 이렇게 시작하는 이 책에는 괴테가 남긴 두 가지 경구가 중요한 키워드로 등장한다.세계는 죽이나 잼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딱딱한 음식을 씹어야 한다.

- 「격언풍으로」 에서

세계는 말하자면 안초비 샐러드다.

모든 것을 하나로 뒤섞어 먹어야 한다.

-「비유적 및 경구풍으로」에서

도이치는 이 서로 다른 두 세계관을 각각 ‘잼적 세계‘ ‘샐러드적 세계‘라고 이름 붙였다. 그의 말에 따르면 잼적 세계란 모든 것이 하나로 녹아든 상태, 샐러드적 세계란 사물이 개별적 구체성을 유지한 채 하나의 유기체를 이루는 상태를 가리킨다.

이러한 세계관의 유형으로 미국 사회의 ‘용광로‘와 ‘샐러드볼‘,

일본의 ‘어우러짐과 서양의 ‘전일성‘을 서술한 뒤, 주로 괴테문학작품 및 색채론』, 세계문학 이론 등을 인용하며 괴테의 흔들리는 세계관을 탐구해 나간다.

89 ˝괴테는 개인의 한계를 꽤나 의식하고 있었어. 직업의 전문성도 강하게 주장했고, 예술은 제약 속에서 태어난다고도 말했지. 하지만 자네가 말한 대로 괴테는 무한함을 추구하는 자신의 본성을 바꿀 수도 없었어. 그러니 거기에는 스스로 경계하는 의미도 있었을 거야. 다양함과 복잡함에서 기쁨을 느끼는 사람은 언제나 혼란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라는 말도 했는데, 그 자신이 바로 그랬겠지.˝
103~104 '이 말을 못 찾으면 내 원고는 완성되지 않아.' 도이치는 머릿속에 꽉 들어찬 그 결론을 되도록 짧은 문장으로 정리하려 했다. 이유는 두 가지를 댈 수 있었다. 첫 번째로 이 명언은 도이치의 관점에서 '모든 것을 말한' 괴테가 '모든 것'에 대해 한 말이라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 그리고 모든 것은 사랑에 의해 혼동되지 말고 혼연일체가 되어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전도서에 나오는 "모든 것에 귀를 기울여 얻은 결론"!). 아니면 사랑을 '정신의 고리'라는 의미로 쓸 때, 괴테 자신이 그 한 단어로 모든 것을 다 말할 수 있다는 뜻이었을까? 두 번째 이유는 더 단순한데, 만약 이 말을 괴테가 하지 않았다면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 말은 도이치에게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는 증거이며, 이는 곧 도이치가 여태까지 해온 학문에 대한 전면적 긍정이기도 했다.
154 ˝하지만 내가 아직 자네의 선생인 셈 치고 한마디 하자면, ‘네 노력은 사랑 속에 있어야 하고, 네 생활은 실천 속에 있어야 한다‘라고 말하고 싶네. 이것만 잊지 않으면 지금으로선 문제가 없어. 이건 괴테의 말이지?˝
202 그 말이 지금 나한테 도움이 되는지를 생각하기 시작했어. 실제로 괴테도 말했잖아. '금언이나 명구는 언제나 대용품일 뿐이다'라고. 엄마가 아플 때면 늘 무슨 오일을 어디에 발라야 하는지 적힌 종이를 펼쳐보는 것처럼 여차할 때 쓸 수 있는 말을 찾을 수 있도록 처음에는 공책에 발췌해서 적기 시작했어. 그런데 난 역시 아빠 딸이더라. 어떻게든 체계적인 시각 정보로 파악하고 싶어져서 이 사이트를 만들었지.
210 ..˝열이 확 받아서 ‘언어 시스템 자체가 인용이야‘라고 쏘아붙였지. ‘보르헤스도 그렇게 말했거든‘ 하고. 그랬더니 쓰즈키가 ‘논쟁에서 권위를 방패로 쓰는 사람은 지성이 아니라 기억력을 쓰는 것에 불과해‘라잖아. ‘다빈치도 그렇게 말했어‘ 하면서. 그럼 사귀는 수밖에 없지.˝
212 그리고 생각했다. 자신의 명언 찾기는 결코 의미 없는 짓이 아니었다. 모든 것은 반드시 이어져 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무언가로부터 생겨났고, 우리는 아직 살아 있으니까.

3. 생각 나누기

첫 번째 생각나누기, 작품의 출발점이 되는 문장 “Love does not confuse everything, but mixes. 사랑은 모든 것을 혼동시키지 않고 혼연일체로 만든다.”(p.38~45)“는 매우 아름답고 인상적인 문장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그 문장의 의미 자체를 깊이 탐구하기보다, 오히려 그것이 정말 괴테의 말인지 아닌지를 추적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래서 독자는 어느 순간 ‘이 말이 왜 좋은가’보다 ‘이 말에 괴테라는 이름이 붙었기 때문에 더 중요한 것은 아닌가’를 생각하게 된다. 이 장면은 우리가 문장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문장에 붙은 권위와 이름을 사랑하는 것은 아닌지 되묻게 만든다.

또한 “독일 사람은 말이야. 명언을 인용할 때 그게 누구의 말인지 모르거나 실은 본인이 생각해 낸 말일 때도 일단 ‘괴테가 말하기를’이라고 덧붙여 둬. 왜냐하면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거든.”(p.23)이라는 문장은 농담처럼 들리지만, 사실 소설 전체의 문제의식을 압축해 보여준다. 우리는 어떤 문장을 읽을 때 그 문장이 정확하고 깊은지보다, 누가 말했다는 이름표를 먼저 확인하는 습관이 있다. 오늘날 SNS나 명언 계정에서 출처 불명의 글이 유명인의 이름과 함께 유통되는 현실을 떠올리면, 이 장면은 단지 소설 속 설정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읽기 방식 자체를 비추는 것처럼 보인다.

Q1 : 우리가 일반적으로 유명인이 말한 명언에 감동을 받고 진실로 받아 들이는 것이 ‘문장의 의미’일까, 아니면 ‘문장에 권위를 부여하는 이름의 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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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생각나누기, 이 소설에서 등장하는 많은 인용문과 명언들이 등장인물의 감정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말은 붓에 닿는 순간 죽어버린다”(p.38~39)와 같은 문장은 그 자체로는 매우 인상적이지만, 그런 문장들이 인물의 삶과 감정을 통과하기보다 먼저 문장 자체의 무게를 드러낼 때 독자는 인물에게 다가가기보다 문장의 표면을 감상하게 된다. 말은 넘쳐나는데 정작 그 말을 하고 있는 인간의 감정은 잘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말이 많아질수록 사람이 흐려지는(p.39)’ 역설을 보여주는 것처럼 읽히기도 한다.

Q2 : 이 소설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인용문과 명언은 인물의 내면을 가리도록 하는 ‘감정적 거리감’을 만들고 있는데 이는 의도된 형식적 장치인지, 서사의 한계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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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생각나누기, 노리카는 명언 사이트 ‘Tree of Words’를 운영하며 “오래전부터 좋은 말이 뭔지 알고 싶어서… 시작했고”, 나중에는 “그 말이 지금 나한테 도움이 되는지를 생각하기 시작했어”(p.201~202)라고 말한다. 이 태도는 출처와 권위를 중시하는 도이치의 태도와 뚜렷하게 대비된다. 하나는 문장의 정통성과 진위를 중시하고, 다른 하나는 지금의 삶에서 그 말이 실제로 어떤 힘을 갖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Q3 : 출처가 정확한 말이라도 지금의 나에게 아무 힘이 되지 않는다면 여전히 가치가 있는가. 반대로 출처가 불분명해도 지금 나를 움직이고 위로하는 문장이라면 받아들일 수 있는가. 즉,명언을 대하는 태도에서 '정확성'과 '효용'은 대립하는가, 아니면 함께 갈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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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생각나누기, 작품 속에는 “모든 것은 이미 말해졌다.”(p.104), “우리는 기껏해야 그것을 다른 형식이나 표현으로 되풀이할 뿐이야.”(p.116)라는 인식이 등장한다. 이 말은 인간이 자기만의 완전히 새로운 언어를 갖기란 불가능하며, 결국 우리는 이미 존재하는 말과 전통의 언어를 빌려 자신을 설명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우리가 누군가의 문장에 기대어 자신의 감정과 삶을 말하는 일은 진정성의 결핍일까, 아니면 인간이 본래 서로의 언어를 통해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방식일까. 이 질문은 작품 속 ‘인용’의 문제가 단지 기법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존재와 언어의 한계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보여준다.

Q4 : 인간은 자신의 감정과 삶을 정말 '자기만의 말'로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결국 타인의 말을 빌려야만 자신을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문학과 명언, 인용은 개인의 의견을 감추는가, 아니면 삶을 더 정확하게 표현하게 해 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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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생각나누기, “실생활에서 따오든 책에서 따오든 그런 건 아무 상관 없어. 제대로 사용했는지 아닌지, 그것만이 중요하지!”(p.117)라는 문장은 인용의 가치를 출처보다 사용의 적절성에서 찾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배경 설명 없이 빈번하게 제시되는 인용들이 사유의 여지를 열기보다, 독자에게 작가의 지적 과시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같은 인용이라도 어떤 순간에는 생각을 넓혀 주는 도구가 되고, 또 어떤 순간에는 독자를 밀어내는 교양의 장식이 되기 때문이다.

Q5 : 인용이 생각을 넓혀 주는 유효한 장치가 되는 것은 언제이고, 또 간혹 상대방을 압도하는 지적 과시로 느껴지는 것은 어느 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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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째 생각나누기, 움베르트 에코는 『장미의 이름』에서 “우주라고 하는 것이 아름다운 까닭은, 다양한 가운데에도 통일된 하나의 법칙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통일된 가운데에서도 다양하기 때문일 수도 있는 것”(p.41)이라고 말하며, 다양성과 통일성은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압도해야 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를 더 풍부하게 만드는 조화의 미학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도이치는 괴테의 두 경구, “세계는 죽이나 잼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딱딱한 음식을 씹어야 한다.”(p.41)와 “세계는 말하자면 안초비 샐러드다. 모든 것을 하나로 뒤섞어 먹어야 한다.”(p.41)에서 출발해 세계를 ‘잼적 세계’와 ‘샐러드적 세계’로 구분한다. 하나는 모든 것이 하나로 녹아든 상태를, 다른 하나는 사물이 개별적구체성을 유지한 채 하나의 유기체를 이루는 상태를 떠올리게 한다. 이 대목은 결국 좋은 공동체나 관계란 ‘하나가 되는 것’ 자체보다, 서로의 차이를 어떻게 지우지 않으면서 함께 존재할 수 있는가의 문제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Q6 : 에코의 말처럼 다양성과 통일성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 더 바람직한 미학이라면, 도이치가 말한 '잼적 세계'와 '샐러드적 세계'중 무엇이 인간관계와 사회를 더 건강하게 설명한다고 생각하는가? 또 그 이유는 무엇인가?

특정 주제에 대해 더 알아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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