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리 루니 『인터메초(Intermezzo)』 등장인물 관계
아버지의 죽음 이후, 두 형제가 각자의 사랑과 상처를 통과하는 관계의 구조
(Peter Koubek)
(Ivan Koubek)
1. 작가 소개
샐리 루니(Sally Rooney)는 1991년 아일랜드 서부에서 태어난 소설가다. 첫 장편 『친구들과의 대화(Conversations with Friends)』를 2017년에 발표하며 젊은 세대의 사랑, 계급, 지성, 우정, 욕망을 차분하면서도 날카로운 문장으로 보여주었다. 이 작품에서 루니는 사랑을 단순한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 돈, 말, 침묵, 자기기만이 뒤엉킨 관계의 문제로 다룬다. 인물들은 서로를 좋아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고, 정치적 신념과 사적인 욕망 사이에서 계속 흔들린다.
2018년 발표한 『노멀 피플(Normal People)』에서는 메리앤과 코넬의 관계를 통해 사랑이 어떻게 계급, 가족, 학교, 자존감의 문제와 연결되는지 보여주었다. 이 작품은 루니를 세계적인 작가로 알린 대표작이다. 『노멀 피플』에서 사랑은 운명적인 만남이라기보다, 서로를 알아보는 능력과 동시에 서로를 상처 주는 미숙함의 문제로 나타난다. 두 사람은 깊이 연결되어 있지만, 말하지 못하고 피하고 오해하면서 계속 어긋난다.
2021년의 『아름다운 세상, 어디에 있니(Beautiful World, Where Are You)』에서는 인물들이 사랑과 우정뿐 아니라 문학, 노동, 종교, 세계의 붕괴 같은 더 넓은 문제를 직접 이야기한다. 여기서 루니의 관심은 개인의 감정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가 망가진 세상에서 어떻게 아름다움을 찾고 살아갈 수 있는지로 옮겨간다. 이전 작품들보다 사유가 더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인물들은 자기 삶을 둘러싼 정치적·윤리적 조건을 더 많이 의식한다.
2024년에 나온 네 번째 장편 『인터메초(Intermezzo)』는 루니의 세계가 한층 넓어졌다는 느낌을 준다. 제목인 인터메초(Intermezzo)는 음악에서 막간곡, 체스에서는 예상된 수순 사이에 끼어드는 뜻밖의 수를 떠올리게 한다. 이 소설에서 인터메초는 삶의 중심 사건이라기보다, 죽음 이후 잠시 찾아온 이상한 틈이다. 아버지가 죽은 뒤 피터와 아이번은 이전과 같은 삶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둘은 형제이지만 서로를 거의 이해하지 못하고, 각자의 사랑 속에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새롭게 마주한다.
샐리 루니의 작품은 늘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그 사랑은 낭만적인 결말을 향해 곧장 나아가지 않는다. 사랑은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어 하는 마음, 타인을 판단하고 싶은 마음, 자기 삶을 정당화하고 싶은 마음, 선함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한꺼번에 얽힌 복잡한 상태다. 『인터메초』에서 루니는 특히 “의미”에 집착하는 인간을 보여준다. 사람은 자신의 삶이 무언가로 이어진다고 믿고 싶어 한다. 하지만 삶은 때로 아무 결론 없이 흩어지고, 그럼에도 타인과 연결되는 순간만큼은 다시 의미를 얻는다. 루니는 현대의 사랑을 가볍게 소비하지 않고, 사랑이 어떻게 윤리와 책임, 계급과 나이, 몸과 정신, 가족과 공동체의 문제로 번지는지 생각하게 만든다.
2. 내용 요약
『인터메초』는 아버지를 잃은 두 형제 피터와 아이번의 이야기다. 형 피터는 더블린에서 일하는 유능한 변호사다. 겉으로는 성공했고 말도 잘하고 사람들과도 자연스럽게 어울리지만, 속으로는 무너져 있다. 그는 첫사랑이자 오랜 연인인 실비아를 여전히 사랑한다. 하지만 실비아는 불의의 사고 이후 만성적인 통증을 안고 살아가고, 두 사람의 관계는 사랑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피터는 실비아를 떠나지 못하면서도 10살 어린 여성 나오미와 관계를 이어가고, 그 과정에서 죄책감과 욕망, 자기혐오에 빠진다.
동생 아이번은 스물두 살의 체스 선수다. 사회생활에는 서툴고 형과도 어색하지만, 자신만의 감각과 진지함을 가진 인물이다. 그는 지역 체스 이벤트에서 마거릿을 만난다. 마거릿은 서른여섯 살이고, 남편과 별거 중이다. 두 사람은 나이 차이와 상황의 불편함에도 빠르게 가까워진다. 아이번은 마거릿에게서 삶을 다시 사랑할 수 있는 감각을 느끼고, 마거릿은 아이번을 통해 억눌렸던 자기 삶이 풀려나는 듯한 자유를 경험한다.
그러나 이 관계는 곧 형 피터와의 갈등을 크게 만든다. 아이번은 피터에게 마거릿의 나이와 결혼 상태를 말하고, 피터는 마거릿을 의심하는 말로 아이번에게 상처를 준다. 아이번은 분노하지만 곧 자신이 마거릿의 신뢰를 가볍게 다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 장면은 형제 갈등뿐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의 삶을 타인에게 설명하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준다.
피터 역시 자신의 삶을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 실비아에 대한 사랑, 나오미와의 관계, 아버지에 대한 상처, 동생에 대한 질투와 책임감이 뒤섞여 있다. 그는 늘 옳은 것을 원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붙잡지 못한다. 아이번과 마거릿도 마찬가지다. 두 사람은 서로를 좋아하지만, 그 관계가 타인에게 어떤 의미로 보일지, 누가 다칠지, 어디까지 솔직해야 하는지 계속 고민한다.
소설의 후반부에서 인물들은 사랑이 단순히 “내가 원하는 것”의 문제가 아니라, 타인에게 무엇을 주어야 하는가, 내 사랑이 어떻게 보여지는가의 문제라는 사실을 점점 깨닫는다. 아이번은 체스보다 더 넓은 삶을 생각하게 되고, 마거릿은 자유로운 삶도 결국 타인의 요구와 연결 속에 있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피터는 선과 악, 성숙함과 젊음, 사랑과 욕망을 나누려 하지만 그 경계는 계속 흐려진다. 『인터메초』는 어떤 완전한 결말보다, 삶이 더 복잡해지고 더 많아지는 순간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3. 기억할 만한 문장들
의미가 있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
p.27
“한때는 인생이 무언가로 이어져야만 한다고, 해결되지 않은 모든 갈등과 의문이 더 큰 정점으로 이어진다고 믿었다. 이처럼 정작 충분히 고민해보지 못한 생각들이 그의 삶을, 그의 성격을 떠받친다. 의미에 대한 비이성적인 집착. 전부 아무렇지도 않다가 갑자기 헌법에 어긋나지 않느냐는 의문이 떠오르고, 그런 식이다. 피터는 어떤 것이 다른 것을 의미하고 그것이 또 무언가를 의미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아침에 일하러 갈 수가 없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무엇으로 이어질까. 종결이 없는 끝.”
p.74
“삶이 본질적으로 서로 상관없는 경험의 집합일 뿐이라면? 어떤 일이 다른 일과 유의미하게 이어져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
이 문장들은 『인터메초』 전체를 관통하는 질문처럼 느껴진다. 피터는 삶이 하나의 논리적 구조를 가져야 한다고 믿고 싶어 한다. 한 사건은 다음 사건으로 이어져야 하고, 갈등은 더 큰 결론을 향해 가야 하며, 감정에도 이유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소설 속의 삶은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다. 아버지의 죽음은 명확한 교훈으로 정리되지 않고, 사랑은 사람을 더 선하게만 만들지 않으며, 형제 관계는 오랜 시간이 지났다고 저절로 회복되지 않는다.
이 문장에 공감된 이유는 우리도 자주 이와 비슷한 생각으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나에게 일어난 일이 어떤 의미를 가져야 한다고 믿고, 고통에도 이유가 있기를 바라고, 지금의 혼란이 언젠가 하나의 행복한 결말로 정리되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작가는 그런 기대를 쉽게 들어주지 않는다. 오히려 “종결이 없는 끝”이라는 말로, 삶이 꼭 정점이나 결론을 향해 가지 않고 끝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이 소설에서는 의미가 완전히 없다고 말하는 대신, 의미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계속 새로 생겨난다고 말한다.
사랑은 누가 먼저 다가가는 일에서 시작된다
p.42
“하지만 또, 알고 보니 원하지 않았을지는 몰라도 한 사람이 먼저 다가가지 않으면 어떻게 서로 좋아 하는 상황에 도달할까?”
이 문장은 사랑의 시작에 관해 단순하게 그리고 꽤 정확하게 한 말이다. 두 사람이 서로 좋아하게 되는 상황은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안에는 언제나 누군가의 작은 용기에서부터 시작한다. 먼저 말을 걸고, 먼저 연락하고, 먼저 마음을 내보이는 사람이 있어야 관계는 움직인다. 물론 그 행동은 나중에 부끄럽거나 성급하게 느껴질 수 있다. 때로는 무안을 당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도 다가가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인터메초』에서 아이번과 마거릿의 관계도 그렇다. 두 사람은 처음부터 완전히 준비된 상태가 아니다. 오히려 둘 다 불안하고 어색하며, 자기 삶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상태다. 그런데도 둘 사이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끌림이 생긴다. 이 문장은 그 끌림이 우연처럼 보이지만, 결국 누군가의 움직임을 통해 현실이 된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사랑은 가끔 너무 조심스럽게 살던 사람에게 “그래도 한번 다가가야 한다”는 순간을 만든다. 그런 순간이 있다.
정신과 육체, 논리와 통제 불가능한 삶
p.44
“인간의 정신은 무게가 없고, 추상적이고, 지극히 합리적일 수 있다. 인간의 육체는 무겁고, 우울할 정도로 특정적이고, 전혀 합당하지 않다. 육체는 이런저런 일을 할 뿐, 아무도 그 이유를 모른다. 육체는 모종의 이유로 스스로를 공격하거나 영뚱한 곳에 있는 세포를 증식시킨다. 아무 설명도 없다. 정신도 그럴까? 아니다. 음, 그래, 정신 질환의 경우에는 비슷할 수도 있지만, 그건 다르다. 다를까? 아무튼. 아이번의 정신은 완벽과 거리가 멀고 비교적 수월한 일이 주어져도 해내지 못할 때가 종종 있지만, 적어도 정신은 논리에 반응한다. 그것이 지각이다. 육체는 지각이 없는 물체에 불과하고, 별개의 지각에 의해 활성화된다. 지각이 없는 자동차가 지각을 가진 운전자에 의해 활성화되듯이 말이다.”
이 문장은 아이번의 사고방식을 잘 보여준다. 아이번은 세상을 논리적으로 이해하려고 한다. 정신은 적어도 논리에 반응한다고 믿고, 육체는 이상하고 무겁고 설명되지 않는 것으로 느낀다. 이 구분은 단순한 철학적 사유가 아니라, 아이번이 삶을 감당하는 방식이다. 몸은 아프고 욕망하고 떨리고 무너진다. 정신은 그것을 설명하려 하지만, 설명은 늘 늦게 도착한다.
『인터메초』에서 몸은 중요한 문제다. 실비아의 몸은 사고 이후 고통을 안고 있고, 피터는 약과 술에 기대며 자기 몸과 정신을 망가뜨린다. 아이번과 마거릿의 관계도 몸의 끌림에서 출발하지만, 곧 마음과 윤리의 문제로 번진다. 사람은 정신에 의해 말하고 생각하고 판단하지만, 동시에 몸 때문에 흔들리고, 몸 때문에 서로에게 다가가며, 몸 때문에 삶의 통제 불가능함을 인정하게 된다.
삶이 살 가치가 있다고 느끼는 순간
p.81
“다른 사람들은 이런 감정을 항상 느낄지도 모른다. 행복감, 만족감, 보호 본능처럼 강렬하고 강력한 감정. 지금처럼 서로를 충족시키고 나면 아주 흔히 느껴지는 감정일지도 모른다. 또는, 행여 드물고 평생 몇 번밖에 못 느끼는 감정이라고 해도 아이번은 이를 위해 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아름답고 완벽하게 그녀를 만난 것. 그래, 인생은 살가치가 있다.”
이 문장은 아이번이 마거릿과의 관계 속에서 처음으로 삶의 밝은 감각을 강하게 느끼는 장면과 연결된다. 그는 사회적으로 능숙하지 않고, 형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며, 체스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확신하지 못한다. 그런 아이번에게 마거릿과의 만남은 단순한 연애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내가 살아 있어도 괜찮다”는 의지에 가깝다.
이 문장이 끌린 이유는 삶의 가치가 거대한 성취에서 오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아이번은 위대한 체스 선수가 되어야만 살 가치가 있다고 느끼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와 완전히 만났다고 느끼는 순간, 서로를 충족시키고 보호하고 싶다고 느끼는 순간, 그는 인생을 긍정한다. 나를 둘러싼 세상이 갑자기 바뀌지는 않았지만, 어떤 사람을 만난 뒤 삶 전체가 조금 다르게 빛나는 순간은 있다.
자유로워졌다고 느끼지만, 그 자유도 의미를 만든다
p.86
“그녀는 지금까지 억눌려왔다, 평범한 삶에 갇혀 억눌리고 통제되었다. 이제 마거릿은 그런 힘에 억눌리거나 통제된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이제 그 무엇도 그녀를 통제하지 않는다. 그물에 갇혀 있던 삶이 풀려났다. 이제 마거릿은 아주 이상한 행동도 할 수 있다, 아주 이상한 사람이 된 자신을 발견한다. 젊은 남자가 성적인 이유로 그녀를 휴양 별장에 초대할 수 있다. 그건 아무 의미도 없다. 아니 그렇지 않다. 뭔가 의미가 있지만 그 의미가 낯설다.”
마거릿은 아이번을 만나며 자기 삶이 이전의 틀에서 빠져나온 듯한 느낌을 받는다. 결혼, 지역 사회, 직장, 나이, 타인의 시선은 마거릿을 오래 붙잡아두던 그물이다. 그런데 아이번과의 관계는 그 그물을 잠시 느슨하게 만든다. 그래서 마거릿은 자신이 “아주 이상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고 느낀다.
하지만 이 문장의 핵심은 “그건 아무 의미도 없다. 아니 그렇지 않다”라는 뒤집힘에 있다. 새로 찾아온 자유가 의미 없음처럼 느낀다. 아무에게도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아무 책임도 지지 않아도 되는 상태처럼 보인다. 그러나 곧 마거릿은 그 관계에도 의미가 생긴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낯선 의미다. 이전의 도덕과 관습으로는 바로 설명되지 않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니다.
형제 사이에서 사랑을 말하려다 무너지는 장면
p.236-244
“아이번은 테이블 맞은편의 피터를 지켜보며 생각하다가 마음속에 용기가 모여드는 것같아서 이렇게 말한다. 그래서, 형은 요즘 어떻게 지내?
피터가 빈 와인병을 얼음 통에 다시 넣으며 묻는다. 무슨 뜻이야?
아니, 뭐. 그러니까, 누구 만나거나 해? 피터가 아이번을 보며 눈썹을 치켜올린다. 아. 음, 아까 너도 말했잖아. 늘 그렇게 단순한 문제는 아니지. 아이번이 잠시 말을 멈췄다가 용기 내서 말한다. 다시 만나는 건 아니지, 그...
피터는 아이번이 문장을 마치도록 잠시 기다리지만 아무 말도 없자 간단하게 말한다. 실비아랑 말이지?
응.
이름 말해도 돼. 금지된 것도 아니고.
아이번이 고개를 끄덕인다. 이제 대화가 달라졌다, 더 심각해졌다. 정확한 표현을 찾으려고 애써야 한다. 응, 그렇지. 그냥 주제넘게 끼어들고 싶지 않아서 그랬나 봐.
아니야, 괜찮아. 끼어드는 거 아니야. 실비아가 널 얼마나 아끼는지 너도 알았으면 좋겠다.
알아. 나도 실비아를 좋아해.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아이번이 덧붙인다. 사실 난 실비아가 보고 싶어.
피터가 메뉴판을 내려다보지만 정말 읽는 것 같지는 않다. 그렇겠지. 그가 말한다. 실비아도 그런 것 같더라. 피터가 침을 삼키는 듯하더니 고개를 들고 덧붙인다. 실비아가 그러는데 우리가 점점 닮아간대. 너랑 나 말이야.
아이번은 어느새 웃고 있다, 약간 취한 기분이다. 아. 재밌네. 아닌거 같은데.
음. 나한테 너처럼 젊은 매력은 없지, 물론. 하지만 실비아가 너 기분 나쁘라고 한 말은 아니었을 거야. 피터가 디저트 메뉴판을 뒤집어 따뜻한 음료와 주류 목록을 보면서 말한다. 실비아는 나한테 무척 중요한 사람이야. 너도 알겠지만 내 삶에서 아주 큰 부분이고, 앞으로도 늘 그럴 거야. 하지만 우리가 헤어진지 한참 지났으니 이제는 각자의 삶이 있는 것 같아. 어렵지. 많은 감정이 얽혀 있으니까. 그러니까, 솔직히 말해서 난 아직도 실비아를 사랑해. 아주 많이, 응. 하지만 복잡해.
아이번이 고개를 끄덕인다. 평생 처음으로 피터가 아이번을 동등한 사람으로, 인생과 친밀한 관계의 복잡함을 이해하는 사람으로 대하며 이야기하는 느낌이 든다. 아이번은 자기가 바로 그런 사람이라고, 그런 복잡합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피터는 많은 감정이 얽혀 있다고 말했는데 아이번은 그게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안다. 마거릿과 함께 있었을 때, 그녀가 울어서 그가 안아주었을 때. 그때 많은 감정이 얽혀 있었다. 너무 많은 감정이. 형과 실비아도 비슷한 상황이라고 생각하자 아이번은 묘하고 슬픈 기분이 들지만 왜 그렇게 슬픈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아이번은 자기가 얼마나 잘 이해하는지, 자기도 어떤 면에서는 두 사람과 얼마나 비슷한 상황인지, 전부 다 피터에게 진심으로 전하고 싶어서 메뉴판을 내려다보다가 거의 무의식적으로 피터의 태연한 태도를 흉내 내며 말한다. 무슨 말인지 알아. 내가 만나는 여자 말이야, 전남편이랑 별거 중이거든. 그래서 마찬 가지로 상황이 좀 복잡해.
잠시 후, 아이번은 여전히 메뉴판을 내려다보고 있지만 자신을 빤히 보는 피터의 시선이 느껴진다. 또다시 이상한 느낌. 그가 고개를 들고 형이 정말로 자신을 빤히 보고 있음을 확인한다, 얼굴을 살짝 찌푸리고 있다.
미안한데, 그 여자가 뭐라고? 피터가 말한다.
아이번은 자신감이 줄어드는 것을 느끼고 정말 취했나 생각하면서 머뭇머뭇 다시 말한다. 남편이랑 별거 중이라고. 피터가 아이번을 계속 빤히 보면서 묘하게 차분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 여자 몇 살이야?
아이번이 자기도 모르게 침을 삼기고 말한다. 서른여섯 살. 피터가 잠시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인다. 그가 여전히 차분한 목소리로 묻는다. 애는 있어?
아니.
피터가 손가락으로 눈을 문지른다. 이제 피곤하고 우울해 보인다. 그가 느릿느릿 말한다. 오해하지 마, 아이번. 하지만 그 여자는 거의 마흔 살이야. 결혼도 했고. 넌 스물두 살이고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해서 직업도 없어. 비난하려는 건 아니지만 네 생각에 그 나이의 정상적인 여자가 너 같은 처지의 애랑 어울리고 싶어 할 것 같아?
아이번은 목덜미와 겨드랑이가 따끔거린다. 혈관이 따끔거린다. 무슨 말이야? 그 사람이 정상이 아니라는 거야?
의문이 든다는 거야.
형은 그 사람을 모르잖아.
그건 너도 마찬가지야. 피터가 말한다. 몇 번이나 만났는데. 두번?
아이번은 온몸이 뜨겁게 떨리는 것을 느끼면서 의자를 뒤로 밀며 일어선다. 꺼져.
피터가 앉은 채로 지친 미소를 띠며 말한다. 우리 교양 있게 굴면 안 될까?
아이번이 일부러 목소리를 낮취서 거의 씩씩거리며 말한다.
난 사실 형이 싫어. 지금까지 늘 싫었어.
피터는 미동도 없이, 다른 손님이나 직원이 두사람을 보는지 둘러보지도 않고 대답한다. 알아. 아이번은 바깥의 밤공기 속으로 나와서 빠르게 성큼성큼 걸어가며 행인이 마주 오면 도로로 내려서서 피한다. 빠득빠득 갈리는 어금니가 느껴진다, 귓가에 그 끔찍한 소리가 들린다. 피터는 네 생각에 정상적인 여자가, 라고 말했다. 그 생각이 우습다는 듯이. 하지만 피터가 뭐라고 생각하든 뭐라고 말하든 마거릿은 사실 정상적인 여자다. 아니어도 아이번은 상관없다. 형과 달리 아이번은 정상성에 어리석을 만큼 높은 가치를, 사실상 도덕적인 가치를 두지 않으니까. 정상성이란 달리 말하면 지배 문화에 순응한다는 뜻이다. 게다가 사실 마거릿은 피터가 정상이라고 생각할 만한 사람이다. 지적이고, 교양 있고,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피터가 말하는 정상이 아니라는 건 도대체 뭘까? 정신적으로 온전하지 않다고? 아니면 전남편에게 복수하거나 뭐 그럴 목적으로 아이번을 이용할 뿐이라는 건가. 상관없다. 마거릿은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니다. 아이번은 서서히, 타인들의 목소리와 육체 사이에서 조금 더 천천히 움직이면서, 얼굴에 몰려 들었던 열기가 흩어지는 것을 느낀다. 열에너지가 되어 주변 공기에 흡수된다. 그로 하여금 식당을 갑자기 뛰쳐나오게 만든 흉포한 분노가 점차 가라앉는다. 이제 그의 마음을 지배하는 강력하고 꺼림칙한 감정은 분노가 아닌 다른 것이다. 아이번은 마거릿의 나이와 결혼 여부를 그런 식으로 피터에게 알리는 것이 좋은 생각이 아니었음을-반대로 충격적일 만큼 나쁜 생각이었음을-서서히 깨닫는다. 첫째, 애초에 피터를 믿고 그런 이야기를 털어놓지 말았어야 한다. 둘째, 이왕 그런 실수를 할 거면 그 정보를 조심스럽고 적절한 방식으로 전달하려고 애써야 했다. 이제야 알겠다. 너무나 명백하다. 지난번에 마거릿은 피터가 사실을 알면 그녀를 어떻게 생각할까 걱정했다. 그녀의 상황이 이상해 보일 수 있고 오해를 살 수도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아이번은 피터에게 그 이야기를 함으로써 -내용 자체만이 문제가 아니라 무심한 말투로 미리 생각해보지도 않고 말했다는 점에서도- 마거릿이 원하지 않는 행동을 했음을 깨닫는다. 그녀가 아이번의 가족에 대해서,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해서 걱정하던 바로 그 상황을 아이번이 직접 나서서 만든 셈이다. 이제 피터는 마거릿이 걱정했던 것처럼 그녀를 안 좋게 생각하는데, 전부 아이번 때문이다. 이런 생각이 들자 아이번은 너무나 큰 충격을 받은 나머지 걸음을 멈추고 거리에 가만히 서서, 심연처럼 깊은 극도의 절망과 굴욕에 빠진 채 축축하고 금이 간 보도를 내려다본다. 바로잡을 수 있을까. 말하자면 그가 피터에게 연락을 해서 마거릿의 성격과 도덕성에 대한 오해를 어떻게든 정정하는것이 가능할까. 하지만 아니, 안 될 거야. 아이번은 생각한다. 저녁 식사 때 그가 한 말은 전부 진실이었고, 피터는 마거릿을 잘못 판단했지만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내린 판단이었다. 합리적으로 생각했을 때 피터의 마음을 바꿀 만큼 정상참작이 되는 정보가 무엇일지 모르겠다. 그러자 아이번은 마음이 무척 불편하지만 자신도 마거릿의 결혼 생활에 대해 대단히 잘 알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어 그는 마거릿의 전남편 이름이 무엇인지, 직업은 무엇인지, 결혼 생활을 얼마나 오래 했는지, 두 사람의 관계가 왜 끝났는지 사실 모른다. 아이번은 방금 저녁 식사 자리에서 비밀을 털어놓는 말투로 이야기했지만 마거릿은 결혼 생활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유의미할 정도로 마음을 터놓지 않았다. 피터는 네 생각에 그 나이의 정상적인 여자가, 라고 말했다. 이 말을 떠올리자마자 다시 성큼성큼 걷게 될 정도로 새삼 분노가 치솟는다. 아이번이 멍청하게 굴고 하면 안 될 말을 했다고 해서 피터가 그런 식으로 반응한 것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피터는 난데없이 비난하고 비꼬는 대신 열린 마음과 감수성을 보여줄 수도 있었다. 아이번은 피터가 근본적으로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두 번 다시 피터와 만나거나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된다면 아이번의 인생은 전혀 나빠질 것이 없고, 오히려 휠씬 나아질 것이다. 지금부터 아이번은 형의 번호를 차단하고 거리에서 마주쳐도 아는 척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들, 예를 들어 공개적인 자리에서 모른 척해서 피터를 기분 나쁘고 당황스럽게 만드는 상상을 해봤자 훨씬 더 고통스럽게 후회를 곱씹는 일에서 잠시 주의를 돌릴 뿐이다. 아이번은 자신을 얕보는 형 앞에서 세상 물정을 잘 아는 어른인 척하려고 애쓰다가 멍청한 짓을 했다. 하지만 멍청한 짓 보다도 나쁜 것은 그가 무척 좋아하고 어쩌면 그를 좋아할지도 모르는 여자의 신뢰와 믿음을 배신했다는 점이다. 무엇이 이보다 더 나쁠 수 있을까? 아이번은 형을 다시 보지 않겠다는 결심이 잘못을 저질렀다는 자각을 달래는 하찮은 위안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운하를 건너는데 비가 오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보슬보슬 내리지만 곧 세찬 비로 변한다. 아이번은 탁 트인 하늘 아래 머리를 가릴 것도 없이 걸어가면서 -머리카락이 딱 달라 붙고 차가운 빗물이 눈으로 들어간다 - 형을 미워하고, 자신을 미워하고, 한없이 후회한다.”
이 장면은 소설에서 가장 아픈 장면 중 하나다. 처음에는 형제가 아주 조금 가까워지는 듯하다. 아이번은 피터가 자신을 처음으로 동등한 사람으로 대한다고 느끼고, 그 기쁨 때문에 마거릿 이야기를 꺼낸다. 하지만 그 순간 대화는 무너진다. 피터는 마거릿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정상적인 여자”라는 말로 판단하고, 아이번은 분노한다.
그런데 이 장면이 단순한 형제 싸움으로 끝나지 않는 이유는 아이번의 뒤늦은 깨달음 때문이다. 그는 피터가 잘못했다고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자신이 마거릿의 신뢰를 함부로 다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타인에게 말하는 일은 가볍지 않다. 그 이야기는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그 사람의 삶과 존엄에 닿아 있다. 아이번은 형 앞에서 어른처럼 보이고 싶어 했고, 그 욕망 때문에 마거릿을 보호하지 못했다.
이 장면은 작가가 관계를 다루는 방식을 잘 보여준다. 한 사람만 완전히 옳고 다른 사람만 완전히 틀린 것이 아니다. 피터는 잔인하게 말했고, 아이번은 성급하게 행동했다. 둘 다 상처받았고, 둘 다 누군가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 한 명을 쉽게 미워할 수 없고, 관계가 망가지는 순간의 복잡함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관계가 생기면 도덕도 생긴다
p.266-267
“하느님이 존재한다면 마거릿에 게 무엇을 원하는 걸까? 무슨 이유로 아이번 같은 사람을 그녀의 인생에 불러들였을까? 두 사람이 계속 비밀리에 만나면서 가족과 친구들에게 거짓말하고 서로를 속임수와 거짓에 말려들게 하는 것은 분명 옳지 않다. 하지만 마거릿이 지금 전부 다 끝내고 아이번을 두번 다시 만나지 않는 것이 옳을까? 그는 홀로 마거릿이 거의 알지 못하는 삶으로 돌아갈 것이고 그녀는 아이번의 생각이나 감정과 영영 단절될 것이다. 그것이 옳은 일, 하느님이 바라는 일일까? 마거릿은 아이번을 만난 날 두 사람이 새로운 관계를 탄생시켰고, 그것 역시 하나의 존재 방식이라는 느낌이 어렴풋이 든다. 그리고 두 사람이 그 존재 방식에 충실히 임하는 것이 이제는 도덕적 성격을 띠게 되었다. 아이번의 슬픔, 너무나 젊은 나이, 그녀에 대한 애정과 같은 사실들이 지금 상황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 그렇다. 하지만 오로지 이 관계의 기반이 있기 때문이다. 다른 청년이 어떤 이유로든 그녀에게 반한다고 해도 그녀에게 어떤 특별한 요구도 하지 않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베풀어야 하는 일상적인 배려와 예의 외에 마거릿에게 그 무엇도 요구할 권리가 없다. 하지만 분명 마거릿은 아이번에게 그 이상을 주어야 한다. 정확히 무엇을? 진실한 마음, 이해, 어느 정도의 솔직함. 적어도 그만큼은. 어쩌면 하느님의 눈을 통해서 보면 더 많을지도 모른다. 전부 주어야 할지도 모른다. 자존심, 존엄성, 그녀의 삶 자체. 마거릿이 한때 다른 사람에게 주려고 했지만 주지 못한 것들.”
이 문장은 『인터메초』가 사랑을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윤리의 문제로 다룬다는 점을 가장 잘 보여준다. 마거릿은 아이번과의 관계가 사회적으로 불편하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안다. 비밀, 거짓말, 나이 차, 결혼 상태는 모두 두 사람을 압박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관계를 끝내는 것이 곧 옳은 일이라고 확신할 수도 없다. 이미 관계가 생겼기 때문이다. 동시에 마거릿의 섬세한 감정에 답답함을 느끼기도 한다. 나이 차와 타인의 시선을 너무 깊게 생각하며 괴로워하는 모습이 그들이 사는 사회가 매우 보수적이고 타인에 대한 간섭과 관심이 큰 곳이라는 점이 그렇다.
여기서 중요한 말은 “새로운 관계를 탄생시켰고, 그것 역시 하나의 존재 방식”이라는 부분이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순간, 우리는 예전과 같은 사람이 아니다. 그 관계가 나에게 요구하는 것이 생긴다. 마거릿은 아이번에게 적어도 진실한 마음, 이해, 솔직함을 주어야 한다고 느낀다. 이 대목은 사랑의 책임을 무겁게 만든다. 사랑은 감정을 주고받는 일이지만, 동시에 상대에게 어떤 방식으로 존재할 것인지 선택하는 일이기도 하다.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는 이유
p.280
“그는 마거릿을 보면서 사랑해요, 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대신 침을 삼키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이 아니라서가 아니라 그 말을 하면 상황이 더 복잡해질 것을 알았기때문에. 마거릿이 원하는 것은 두 사람이 미래를 약속하지 않은 채 같이 시간을 보내고, 삶에 대해 흥미로운 대화를 나누고, 서로에게 애정과 이해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 문장은 사랑한다는 말이 늘 관계를 좋게 만들지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아이번은 마거릿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 그 말은 거짓이 아니다. 하지만 그 말을 하는 순간 관계는 다른 단계로 들어간다. 말은 감정을 표현하는 도구이지만, 동시에 상대에게 부담을 주고 미래를 요구하는 힘을 갖는다.
마거릿은 아직 미래를 약속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는 아이번과 시간을 보내고, 대화하고, 애정과 이해를 나누고 싶다. 아이번은 그 마음을 어느 정도 알기 때문에 말을 삼킨다. 이 침묵은 비겁함이 아니라, 어쩌면 사랑의 한 방식이다.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 사랑을 부정하는 일이 아니라, 상대의 속도를 존중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문화와 아름다움, 특권과 자기증명
p.290
“나중에 로마에서, 도리아팜필리 미술관의 텅 빈 뜰에서 보낸 시원한 회색빛 오후. 오렌지 나무 정윈을 둘러싼 석조기둥들. 고요함 속에 딱 하나 열린 머리 위의 창문. 눈물을 글썽거릴 정도로 감동했다. 물려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얻는 것. 고대 조각상의 웅장함, 그래. 소설가 헨리 제임스의 후기 스타일, 크레프드신의 호화로운 촉감, <에이프럴 인 파리>를 부르는 세라 본. 그들이 절대 이해하지 못할 것. 피터는 자신이 그토록 풍성하게 획득한 것을 특권만으로 따라잡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아름다움, 문화, 그래. 돈으로 살 수 없다. 요즘 사람들은 이런 태도를 반동적이라고 부른다. 주인의 도구, 주인의 집. 피에르 부르디외는 뭐라고 할까. 망상일지도 모른다. 그들이 피터에게 열등감을 심어주려는 만큼 그들에게 열등감을 심어준다는 환상. 어쨌든 피터는 타인이 가난해지기를 바라지 않고 부자가 되고 싶지도않다. 그렇다. 피터는 늘 원해온 것만을 원한다. 옳은 것, 최종적으로 옳다고 증명되는 것.”
피터는 아름다움과 문화를 사랑한다. 하지만 그 사랑에는 순수한 감동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자신이 아름다움을 “스스로 얻었다”고 생각하고 싶어 한다. 물려받은 특권이 아니라 자기 노력과 감수성으로 획득한 것이라고 믿고 싶어 한다. 이 생각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지만, 동시에 자기방어처럼 들린다.
이 대목에서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의 이름이 등장하는 것도 흥미롭다. 문화 취향은 개인의 순수한 선택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계급과 교육,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피터는 이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더 불편하다. 그는 자신이 가진 감각이 특권의 산물로만 설명되는 것을 거부하고 싶다. 하지만 완전히 거부할 수도 없다. 이 장면은 피터가 왜 늘 “옳은 것”에 집착하는지 보여준다. 그는 아름다움마저 도덕적 정당성의 문제로 만들고 싶어 한다.
아무 목적 없는 대화와 접촉의 아름다움
p.309
“그녀와 대화를 나누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즐거움, 뭐가 됐든 어떤 말을 하면서 거리를 걷는 것, 그 행위 자체, 둘이 같은 속도로 걷는 것, 그리고 이야기하는 것. 순전히 서로를 재미있고 즐겁게 해주려고, 상대방을 실없이 웃게 하려고. 그이상의 성취를 위해서도 아니고 더 고귀한 목적도 없이, 그들의 말이 축축하고 짭짤한 공기 중으로 나와서 영원히 흩어지도록. 그날 밤 그녀를 문 앞까지 데려다주고 돌아설 때 왜 그토록 키스하고 싶었을까. 가장 단순한 본능. 다른 누구도 끼어들지 않고 그 이상의 무엇도 요구하지 않는 짤막한 접촉. 그 자체로 감동적인, 단번에 주고받는 선물. 그것이 무슨 의미일까? 본질적으로 이성을 거부하는 욕망. 살아남겠다는 의지, 삶 그 자체에 대한 욕구. 요즘, 어제, 어젯밤, 오늘 아침, 나는 모든 걸 원했어요. 음, 잘 자. 피터가 말했다. 거리는 조용하고 가로등 불빛 아래는 서늘했다.”
이 문장은 피터의 욕망을 가장 부드럽게 보여준다. 그는 늘 의미, 옳음, 문화, 판단에 매달리지만, 사랑 앞에서는 훨씬 단순한 사람이 된다. 누군가와 같은 속도로 걷고, 실없는 말을 하고, 서로 웃게 해주는 일. 그 말들이 공기 중으로 흩어져 아무것도 남기지 않아도 좋은 순간. 이런 모습이 작가 특유의 아름다운 표현이라고 생각된다.
특히 “그 이상의 성취를 위해서도 아니고 더 고귀한 목적도 없이”라는 부분이 좋다. 사랑은 꼭 삶을 완성하거나 구원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같이 걷고 말하는 행위 자체가 충분하다. 피터는 그 단순한 즐거움을 알지만, 동시에 그것을 오래 유지하지 못한다. 그래서 이 문장은 더 애틋하다. 행복은 아주 가까이 있는데, 사람은 자꾸 그것을 더 큰 의미와 더 어려운 구조 속에 집어넣다가 망가뜨린다.
나이 차 관계와 타인의 판단
p.343-344
“두사람의 관계가 잘못일까? 아이번은 절대 아니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그의 외삼촌은 열여덟 살 어린 여자와 결혼해서 아이를 넷쯤 낳았는데, 그게 잘못일까? 이 질문에 마거릿은 사실 요즘사람들은 잘못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고 대답했고, 아이번은 코웃음을 치면서 요즘 사람들은 별 생각을 다 한다고 말했다. 그때 두 사람은 부엌에서 아침 식사로 구운 소다빵에 버터와 잼을 발라 커피와 함께 먹고 있었다. 적어도 그 두 사람의 결혼은 비밀이 아니잖아. 마거릿이 말했다. 아이번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비밀로 하는 게 신경 쓰이면 사람들한테 말해도 돼요. 당신이 말을 안 하는 건 사람들이 멍청하게 반응할까 봐 그러는 거잖아요. 옳고 그름과는 아무 상관 없어요. 마거릿은 사실 다른 사람의 판단이 진심으로 두렵다고 말했고, 아이번은 판단을 두려워하는 것과 그 판단이 타당하다고 믿는 건 다르다고 말했다. 당신이 스스로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어요. 왜 그래야 하죠? 우리는 같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고,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아요. 그러자 마거릿은 잠시 생각에 잠겨 침묵하다가 마침내 말했다. 난 결국 누군가 해를 입을까봐 걱정하는 것 같아. 아이번은 이 말에 충격을 받거나 괴로워하는 기색이 없었고 커피잔을 다시 채울 뿐이었다. 네, 그렇겠죠. 그가 대답했다. 그러니까 내 말은, 그럴 가능성도 있어요. 가능성이 높다고도 할 수 있겠죠. 그래도 자기 삶을 살아야 해요. 내 생각은 그래요. 아이번이 커피를 한 모금 삼키더니 잔을 다시 내려놓았다. 그리고 위안이 될지 모르겠지만, 상처를 받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아마 나일 거예요. 결국 나만 마음을 다치겠죠, 솔직해지자고요. 당신은 아닐 거예요. 마거릿은 경악해서 웃음을 터뜨리며 전혀 위안이 안된다고, 끔찍한 기분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아이번이 미소를 짓고 그녀를 보면서 대답했다. 아, 그렇다면 뭐. 알았어요. 당신일 수도 있겠죠. 난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고 싶으면 그래도 돼요. 마거릿이 두 손으로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고 고개를 저었다. 난 당신이 비슷한 나이의 좋은 여자를 만날 거라고 생각해. 아름다운 열아홉 살짜리를. 당신과 같이 체스를 두겠지. 이 말에 아이번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 장면은 아이번과 마거릿 관계의 핵심 갈등을 잘 보여준다. 아이번은 둘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고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반면 마거릿은 타인의 판단이 두렵고, 더 깊게는 누군가가 다칠까 봐 걱정한다. 여기서 나이 차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책임과 권력, 사회적 시선의 문제로 바뀐다.
아이번의 말은 젊고 솔직하다. 그는 판단이 두렵다고 해서 그 판단이 옳은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이 말은 맞다. 그러나 마거릿의 불안도 단순한 자기검열은 아니다. 그는 더 오래 살아왔고, 관계가 끝난 뒤 남는 상처와 소문, 책임의 무게를 더 잘 안다. 이 장면의 매력은 둘 중 하나만 맞다고 말하지 않는 데 있다. 아이번의 순수함과 마거릿의 조심스러움은 서로 부딪히지만, 둘 다 사랑의 한 얼굴이다.
좋아하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p.351
“물론 어리석지만, 남자와 여자는 서로에 대해서 어리석게 굴기 마련이다. 아이번이 그녀를 보면서 느끼는 다정한 기사도 정신, 그렇게 생각하니 마거릿은 이상한 느낌이 든다. 그가 마거릿의 삶에 대해서 알아야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한편 아이번이 자기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어 하면 마거릿은 기꺼이 들어준다. 이렇게 지내는 것이 잘못일까? 둘이서 어느 정도 시간을 같이 보내고, 서로를 좋아하고, 그것도 많이 좋아하고, 그뿐인 것이.”
이 문장은 『인터메초』의 가장 현실적인 질문 중 하나다. 서로 좋아하고, 시간을 보내고, 다정하게 지내는 것만으로 충분할까. 어쩌면 충분할 수도 있다. 모든 관계가 미래의 약속이나 사회적 승인, 완벽한 정보 공개를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동시에 “그뿐인 것”이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그것이 정말 그뿐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마거릿은 아이번이 자신의 삶을 전부 알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이 말에는 자유로움도 있지만 회피도 있다. 사랑은 때로 상대를 너무 많이 알지 않아도 가능하다. 하지만 오래 이어지려면 결국 상대의 삶을 어느 정도 감당해야 한다. 이 문장은 그 경계에 서 있다. 가벼운 행복과 깊은 책임 사이에서, 마거릿은 계속 흔들린다.
사랑의 정의
p.356
“하지만 내 생각에, 이렇게 말하는 건 슬프지만, 누구든 사랑하는 사람에게 늘 잘해주지는 않는 것 같아.
아이번이 숨을 내쉬고 짧게 헛웃음을 짓는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게 무슨 뜻이에요? 궁금하네요. 그 사람의 감정을 신경 쓰지 않는다면, 잘해주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라지 않는다면 그게 어떻게 사랑이에요? 우리는 사랑의 정의가 서로 다른가 봐요.”
이 대화는 아이번의 순수함을 잘 보여준다. 마거릿은 사랑이 있어도 사람은 늘 잘해주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어른의 말이고, 경험에서 나온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상처를 주고, 때로는 자기 욕망을 앞세우며, 상대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번은 그 말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사랑한다면 당연히 상대의 감정과 행복을 신경 써야 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이 질문은 순진하지만, 그래서 더 중요하다. 사랑이 늘 완벽한 선함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현실적이다. 그러나 그 현실적인 말이 사랑의 책임을 너무 쉽게 낮춰버릴 위험도 있다. 아이번은 바로 그 위험을 지적한다. 사랑하는데 잘해주지 않는다면, 그 사랑은 무엇인가. 이 질문은 피터와 실비아, 피터와 나오미, 아이번과 마거릿의 관계 모두에 던져진다.
체스보다 많은 것
p.370
“만약 물러나게 되더라도 어쩔 수 없다. 인생에는 위대한 체스 말고도 많은 것이 있다. 그래, 위대한 체스도 여전히 인생의 일부이다. 그의 마음을 들여다보면 체스는 매우 강렬하고, 만족스럽고, 생각하면 기분 좋은 인생의 일부이며,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인생에는 많은 것이 있다. 아이번은 사는 법만 안다면 인생 자체가, 인생의 모든 순간이 그 어떤 체스 게임만큼이나 귀중하고 아름다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번에게 체스는 중요한 세계다. 체스는 논리적이고, 규칙이 있으며, 실력과 결과가 비교적 분명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삶은 체스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삶에는 계산할 수 없는 감정, 갑작스러운 만남, 상처, 죽음, 후회가 있다. 아이번은 마거릿을 만나며 체스 바깥의 삶을 조금씩 받아들인다.
이 문장이 감동적인 이유는 아이번이 실패를 단순한 패배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위대한 체스에서 물러나더라도 인생은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사는 법을 안다면 삶의 모든 순간이 귀중하고 아름다울 수 있다. 이것은 소설 전체의 희망에 가깝다. 이 작품은 인물들이 자주 망가지고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삶을 완전히 부정하지 않는다. 삶은 어렵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아름다움이 있다.
약한 존재의 감정과 욕구
p.379
“지금 생각하니 그들은 자기 이익을 좇는 데에만 몰두해서 자기보다 약한 존재의 감정과 욕구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나르시시스트 같다.”
이 문장은 관계 속 권력의 문제를 생각하게 한다. 루니의 소설에서 사랑은 늘 평등하지 않다. 나이, 돈, 경험, 가족, 몸의 상태, 사회적 위치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가 더 약한 위치에 있는지, 누가 더 쉽게 상처받는지, 누가 더 많은 것을 감당해야 하는지가 중요해진다.
이 문장은 특정 인물만 비판하는 말로 생각되지 않는다. 『인터메초』의 인물들은 모두 어느 순간 자기 이익에 몰두한다. 피터는 나오미와 실비아 사이에서 자기 고통을 중심에 두고, 아이번은 마거릿을 사랑하면서도 마거릿이 감당해야 할 사회적 시선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다. 마거릿도 아이번의 젊음과 취약함 앞에서 자신이 어떤 힘을 갖는지 계속 고민한다. 사랑은 서로를 좋아하는 일이지만, 동시에 상대가 나보다 약한 지점이 어디인지 살피는 일이기도 하다.
선함과 품위의 가능성
p.380
“아이번이 아래를 내려다보자 알렉시가 그의 발치에 얌전하게 앉아서 절대적인 믿음과 사랑이 담긴 새까만 눈으로 그를 올려다본다. 바로 이 순간 그 눈을 들여다보자 마음속에서 순수 감정이, 강렬하고 순수하고 또렷한 감정이 느껴진다. 아이번은 이 세상에 연민과 품위가 존재한다는 생각을 한다. 마거릿을, 그녀와 단둘이 있을 때를, 그녀가 조용히 사랑해, 라고 말하는 것을 생각한다. 그런 순간에 그가 느끼는 벅찬 마음, 땅에서 들어올려지는 듯한 느낌은 지금 다시 떠올려봐도 그의 마음속에서 순수하게 빛난다. 그를 항한 마거릿의 다정함과 동정. 아이번은 마거릿이 자기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그런다고 생각한다. 그녀가 너무나 좋아하는 직장 동료들, 친구 애나, 애나의 남편과 아기, 그녀가 이메일로 연락을 주고받는 대학 시절 친구들. 마거릿의 보살필과 관심은 점점 더 확장되어 그녀에게 실망과 상처를 안겨준 사람들, 어머니와 전남편 등등까지 끌어안는다. 타인을 향한 마거릿의 애정 어리고 사려 깊은 태도. 아이번이 자기 가족에 대해서 불평할 때 마거릿은 그의 편을 들면서도 물론 흠이 있지만 전적으로 사악하지는 않으며 결국 인간일 뿐인 크리스틴과 피터 같은 사람들에게 연민을 살짝 드러낸다. 아이번은 그래, 이 세상에는 선과 품위의 여지가 있어, 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살면서 꼭 해야 하는 일은 타인의 결점에 대해서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 선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문장은 『인터메초』에서 가장 따뜻한 문장이다. 아이번은 알렉시의 눈을 보며 절대적인 믿음과 사랑을 느끼고, 그 감정에서 세상에 연민과 품위가 존재한다는 생각으로 나아간다. 이 장면이 좋은 이유는 선함이 거창한 도덕이 아니라 아주 작은 시선과 돌봄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마거릿의 선함은 특정한 사람에게만 향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아이번뿐 아니라 동료, 친구, 가족, 심지어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에게도 어느 정도의 연민을 보인다. 그래서 아이번은 타인의 결점을 불평하는 것보다 타인에게 선함을 보여주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느낀다. 사랑은 나를 행복하게 하는 감정에서 끝나지 않고, 세상을 조금 더 품위 있게 대하는 태도로 확장되어야 한다.
말하지 않아도 아는 우정
p.410
“우정의 다정한 침묵. 두 사람은 앞으로도 계속 나란히 서서 삶이 주는 끔찍한 충격을 마주할 것이고, 무언의 이해라는 오래 되고 편안한 담요가 필요할 때면 서로에게 건네주리라. 더 말하지 않아도 돼. 말하지 마. 다 알아.”
이 문장은 사랑보다 조용하지만 더 오래 가는 친구와의 관계를 보여준다. 『인터메초』에는 말이 많은 장면이 많다. 인물들은 설명하고, 따지고, 판단하고, 자기 마음을 분석한다. 그런데 이 문장은 말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의 소중함을 말한다. “다 알아”라는 감각은 어떤 긴 해명보다 깊다.
우정은 사랑처럼 극적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삶의 충격을 마주할 때, 오래되고 편안한 담요처럼 곁에 있어주는 관계는 사람을 버티게 한다. 작가는 이 짧은 문장으로 말의 한계와 침묵의 힘을 동시에 보여준다. 어떤 관계는 말을 통해 깊어지고, 어떤 관계는 말하지 않아도 무너지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기 삶을 줄이고 싶다는 마음
p.424
“음, 내가 나이가 더 많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모든 게 참 쉬워질 텐데. 지금 당장 당신 나이가 될 수 있다면 주저없이 그렇게 할 거예요.
마거릿이 가슴 아리는 애정을 느끼며 대답한다. 아이번, 당신 인생이잖아. 그렇게 사라지기를 바라지마.그렇게 대단한 인생도 아니었어요, 진짜예요. 당신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면 얼마든지 없어져도 돼요. 아무렇지도 않아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고작 몇년인걸. 이런 말은 좀 그렇지만, 당신을 만나기 전까지 어차피 좋지도 않았어요.”
아이번은 마거릿과의 나이 차가 관계를 어렵게 만든다고 느낀다. 그래서 자기 나이가 더 많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이 말은 사랑스럽지만 동시에 위험하다. 그는 마거릿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면 자기 삶의 몇 년쯤 없어져도 괜찮다고 말한다. 마거릿은 그 말에 애정을 느끼면서도, 아이번의 삶이 그렇게 사라지기를 바라지 말라고 말한다.
이 장면은 사랑의 헌신과 자기소멸 사이의 경계를 보여준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무엇이든 주고 싶다는 마음은 아름답다. 하지만 자기 삶을 하찮게 여기는 방식으로 사랑을 증명하려 한다면, 그 사랑은 상대에게도 부담이 된다. 마거릿이 아이번을 사랑한다면, 아이번의 젊음을 없애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 젊음이 계속 살아 있기를 바라야 한다. 이 장면은 그래서 아주 아프다.
삶은 그물을 벗어나지 못한다
p.428
“모든 것이 혼란스럽다. 이 모든 것이 한 사람을 위해서, 둘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를 위해서다. 그 관계라는 개념에 충실하기 위해서 수없이 많은 중요한 것들을 느슨하게 놓아버린다. 가족의 존중, 동료와 지인의 인정, 제일 친한 친구들의 이해까지. 결국 삶은 그물을 벗어나지 못했다. 자유롭게 풀려나는 삶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삶 자체가 사람을 잡아두고 의미를 부여하는 그물망이다. 속박을 벗어던지고 의미 없는 존재로 계속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람들이, 타인이 그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하지만 타인이 없으면 삶 자체도 없다. 재단, 비난, 실망, 갈등. 그것들은 사람이 서로 연결되어 살아가는 수단이다. 마거릿은 친구들, 이제는 끝난 결혼 생활, 가족, 동료, 마을 사람들 때문에 자신이 꿈꾸는 무한하고 즉흥적인 삶을 완전히 자유롭게 누릴 수 없다. 하지만 아이번 때문에,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무언가 때문에 이전의 존재로 마음대로 돌아갈 수도 없다. 타인의 요구는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증식할 뿐이다. 점점 더 복잡하고 더 어려워진다. 마거릿은 이렇게도 생각한다. 삶이 많아진다고, 점점 더 많아진다고.”
초반에 마거릿은 삶이 그물에서 풀려났다고 느꼈다. 하지만 후반에 이르러 그는 자유롭게 풀려나는 삶 같은 것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인간은 늘 타인과 연결되어 있고, 그 연결은 속박이자 의미다.
이 문장이 중요한 이유는 자유에 대한 환상을 깨뜨리기 때문이다. 우리는 때때로 아무에게도 설명하지 않고, 아무 책임도 지지 않고, 의미 없이 자유롭게 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타인이 없다면 삶 자체도 없다. 우리를 재단하고 비난하고 실망시키는 사람들 때문에 고통스럽지만, 바로 그 타인들 때문에 삶은 의미를 얻는다. 마거릿은 아이번 때문에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고, 주변 사람들 때문에 완전히 즉흥적인 삶도 살 수 없다. 그 결과 삶은 단순해지는 것이 아니라 “많아진다”. 이 표현이 참 좋다. 삶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많아진다는 것. 관계가 늘어나고, 책임이 늘어나고, 감정이 늘어나고, 그래서 살아 있음의 밀도도 늘어난다.
피터의 선과 악, 사랑과 욕망
p.433-434
“두 가지 가치를 맞붙여보자. 성숙함 대 젊음. 그래, 절제 대 방종, 지성 대 본능, 얼마든지 댈 수 있다. 그래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낫다. 한쪽은 일생의 사랑이자 고귀한 양심의 원칙, 솔직히 말해서 그가 지난 몇 년이더라. 14년 동안 누구에게도 진지한 애착을 느끼지 못하게 만든 사람에 대한 복잡한 감정. 물론 어려움이, 타협해야 할 문제가 있지만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원래 그런 의미가 아닌가? 또 한쪽은 그의 포로이자 지배자, 얼마나 되는지 모를 돈과 보석과 선물을 쏟아부은 상대, 약간 거친 것을 좋아하고 매번 그를 능가할 정도로 장난스러운 쾌락을 즐기는 여자. 그가 무기력하게, 패배당한 마음으로 사랑하는 사람. 피터는 그녀와 싸우려 할 때마다, 자존심을 조금이라도 되찾으려 할 때마다 조금 더 깊이 가라앉을 뿐이다. 선 대 악.”
피터는 자기 삶을 특히 두 여자에 대한 사랑에 대해 가치의 대립으로 정리하려 한다. 성숙함과 젊음, 절제와 방종, 지성과 본능, 선과 악. 그는 실비아를 고귀한 사랑의 쪽에 두고, 나오미를 욕망과 방종의 쪽에 놓으려 한다. 하지만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그 구분이 너무 단순하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나오미는 단순한 악도 아니고, 실비아와의 관계도 순수한 선만은 아니다. 피터의 문제는 사랑과 욕망을 너무 쉽게 도덕적 범주로 나누려 한다는 데 있다.
이 장면은 피터가 얼마나 자기 자신을 설명하고 싶어 하는 사람인지 보여준다. 그는 자신의 혼란을 가치의 언어로 정리하면 견딜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사랑은 그렇게 깔끔하게 나뉘지 않는다. 누군가를 사랑하면서도 상처를 주고, 욕망하면서도 돌보고 싶어 하며, 옳은 것을 원하면서도 틀린 행동을 한다. 피터가 “선 대 악”이라고 말하는 순간, 오히려 그가 아직 아무것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느낌을 받는다.
4. 전체적인 감상평
『인터메초』는 샐리 루니가 지금까지 써온 사랑 이야기의 연장선에 있으면서도, 더 무겁고 넓은 소설이다. 이전 작품들이 젊은 연인과 친구들의 관계를 중심으로 사랑, 계급, 욕망, 자존감을 다뤘다면, 이 작품은 거기에 죽음과 가족, 나이, 몸의 고통, 종교적 윤리, 문화적 취향, 돌봄의 문제를 더한다. 그래서 읽는 동안 단순히 “누가 누구를 사랑하는가”보다 “사랑한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
이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은 인물들이 끊임없이 생각한다는 점이다. 피터, 아이번, 마거릿은 자기 감정을 그냥 느끼고 지나가지 못한다. 이들은 감정이 어디서 왔는지, 어떤 의미인지, 도덕적으로 옳은지,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계속 묻는다. 이런 문체는 지치게 하기도 한다. 어떤 장면에서는 인물들이 너무 오래 자기 마음을 분석해서, 감정보다 해설이 앞서는 느낌도 있다. 하지만 바로 그 집요함이 이 소설의 재미이기도 하다. 우리가 실제로 관계 속에서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는지, 얼마나 자주 자기 행동을 변명하고 후회하고 다시 판단하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인터메초』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사랑을 낭만적으로만 다루지 않는 태도다. 아이번과 마거릿의 사랑은 아름답지만 사회적 통념에서 불편하다. 피터와 실비아의 사랑은 깊지만 해결되지 않는다. 피터와 나오미의 관계는 욕망과 돈과 의존의 문제를 피할 수 없다. 이 소설은 어떤 관계도 쉽게 정죄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랑을 무조건 아름답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사랑이 생기는 순간 그 안에 책임도 함께 생긴다.
특히 마거릿의 내면이 좋았다. 그녀는 자유를 원하지만, 결국 자유가 타인 없는 상태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사람은 관계를 통해 속박되지만, 바로 그 관계 때문에 삶이 의미를 얻는다. “삶이 많아진다”는 문장은 이 소설을 오래 기억하게 만든다. 삶은 갈등이 해결되어 단순해지는 방향으로 가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을 사랑할수록, 누군가를 책임질수록, 타인의 시선을 의식할수록 더 복잡해진다. 그런데 그 복잡함이 꼭 불행만은 아니다. 삶이 많아진다는 것은 고통이 많아진다는 뜻이면서, 동시에 사랑과 의미의 가능성도 많아진다는 뜻이다.
이 소설에서 인물들은 사랑을 하면서도 문학, 철학, 문화, 도덕의 언어로 자기 삶을 해석한다. 이 점이 매력적이지만, 때로는 현실의 거친 부분이 너무 세련된 사유로 정리되는 느낌도 있다. 또한 나오미는 중요한 인물이지만, 피터나 아이번, 마거릿만큼 충분히 자기 목소리를 담지 못한다. 그래서 피터가 나오미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는 잘 보이지만, 나오미가 피터와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는 상대적으로 부족한 인상이다. 이 불균형은 소설의 의도일 수도 있지만,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럼에도 『인터메초』는 좋은 소설이다. 이 작품은 사랑이 우리를 구원한다고 쉽게 말하지 않는다. 대신 사랑은 우리를 더 복잡하게 만들고, 더 불편하게 만들고, 더 많은 사람의 감정과 요구 앞에 세운다고 말한다. 그리고 바로 그래서 우리는 조금 더 선해질 기회를 얻는다. 타인의 결점을 불평하는 대신 타인에게 선함을 보여주는 일. 『인터메초』가 마지막에 남기는 교훈은 결국 이것이 아닐까? 완벽하게 옳은 삶은 없지만, 누군가에게 조금 더 다정하고 품위 있게 행동할 수는 있다. 어쩌면 그 정도가 우리가 사랑 안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일지도 모른다.
5. 토론을 위한 질문
1. 『인터메초』에서 인물들은 왜 삶이 하나의 의미로 이어져야 한다고 믿고 싶어 할까?
피터는 어떤 일이 다른 일을 의미하고, 그것이 또 다른 의미로 이어져야만 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아이번도 체스처럼 논리와 규칙이 있는 세계에 익숙하다. 하지만 소설 속 사건들은 뚜렷한 결론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아버지의 죽음, 형제의 갈등, 사랑의 시작과 흔들림은 모두 애매하고 불완전한 상태로 남는다. 이 질문을 통해 인물들이 왜 의미를 필요로 하는지, 의미에 대한 집착이 삶을 견디게 하는 힘인지, 오히려 삶을 더 괴롭게 만드는 방식인지 생각해볼 수 있다.
2. 아이번과 마거릿의 관계에서 사랑과 책임은 어떻게 함께 생겨나는가?
아이번과 마거릿은 서로에게 강하게 끌리고, 함께 있을 때 삶이 더 아름답다고 느낀다.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에는 나이 차, 마거릿의 결혼 상태, 가족과 친구들의 판단, 누가 더 상처받을지에 대한 걱정이 따라붙는다. 이 질문은 두 사람의 사랑을 단순히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기보다, 관계가 생긴 뒤 각자가 상대에게 무엇을 주어야 하는지 생각하게 한다. 진실한 마음, 솔직함, 배려, 기다림, 자기 삶을 지키는 태도 가운데 무엇이 이 관계를 지탱하는지 이야기해볼 수 있다.
3. 피터는 왜 사랑을 선과 악, 성숙함과 젊음, 지성과 본능 같은 대립으로 나누려 할까?
피터는 실비아와 나오미 사이에서 흔들리면서 자기 감정을 이분법적 가치의 언어로 정리하려 한다. 실비아는 오래된 사랑과 양심의 쪽에, 나오미는 욕망과 방종의 쪽에 놓인다. 하지만 실제 관계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이 질문은 피터가 왜 자기 삶을 도덕적 구도로 해석하려 하는지, 그런 해석이 자기 이해를 돕는지, 아니면 자기기만을 강화하는지 살펴보게 한다. 또한 사람이 사랑과 욕망을 구분하려 할 때 어떤 불편한 진실을 피하게 되는지도 함께 생각할 수 있다.
4. 소설에서 “정상성”은 누구를 보호하고 누구를 배제하는 기준으로 작동하는가?
피터가 마거릿을 두고 “정상적인 여자”라는 말을 꺼내는 장면은 아이번에게 큰 상처를 준다. 아이번은 정상성이 지배 문화에 순응한다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이 질문은 소설 속에서 정상이라는 말이 어떤 힘을 갖는지 묻게 한다. 나이 차 관계, 결혼과 별거, 몸의 통증, 사회적 어색함, 경제적 의존 같은 요소들은 모두 정상성의 기준과 부딪힌다. 독자는 이 질문을 통해 어떤 관계가 정상으로 인정받고, 어떤 사람의 욕망이 의심받으며, 그 판단이 실제로 누구를 보호하는지 살펴볼 수 있다.
5. 『인터메초』에서 타인은 삶을 속박하는 존재이면서 동시에 삶을 가능하게 하는 존재로 나타난다. 이 모순은 인물들의 선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마거릿은 한때 삶이 그물에서 풀려났다고 느끼지만, 결국 자유롭게 풀려나는 삶 같은 것은 없다고 깨닫는다. 친구, 가족, 동료, 마을 사람들, 아이번은 모두 마거릿의 삶을 제한하지만, 동시에 그 삶에 의미를 준다. 피터와 아이번도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만, 완전히 끊어낼 수 없는 형제다. 이 질문은 타인의 시선과 요구가 왜 고통스러우면서도 필요한지 생각하게 한다. 또 관계가 많아질수록 삶이 왜 더 복잡해지고, 그 복잡함이 어떤 방식으로 인간을 더 깊게 만드는지 이야기해볼 수 있다.
6. 아이번이 생각하는 선함과 품위는 소설 속 다른 인물들에게 어떤 기준을 제공하는가?
아이번은 알렉시와 마거릿을 떠올리며, 타인의 결점을 불평하기보다 타인에게 선함을 보여주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말은 소설 전체가 남기는 윤리적 명제다. 피터, 마거릿, 실비아, 나오미, 아이번은 모두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거나 상처를 받는다. 이 질문은 선함이 완벽한 도덕성이 아니라, 불완전한 사람들 사이에서 가능한 작은 태도인지 생각하게 한다. 인물들이 각자의 결함에도 불구하고 어떤 순간에 품위를 보여주는지, 또 어떤 순간에 그 품위를 잃는지 함께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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