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로 향하는 긴 하루의 시작
아침 7시 30분, 창밖에 햇살이 막 퍼지기 시작할 즈음, 우리는 서둘러 집을 나섰다. 그런데 아내가 휴대폰을 충전기에 꽂아둔 채 나왔다는 걸 알아차린 건 하남시청역으로 향하던 길목에서였다. 나는 무거운 두개의 캐리어를 끌고 지하철역으로 향하고 아내는 혼자 다시 집으로 달려갔다. 결국 예정했던 지하철을 놓치고 말았다. 다행히도 공덕역에서는 계획했던 공항철도 열차를 무사히 탈 수 있었다. 출발부터 약간의 소동이 있었지만, 여행의 첫걸음은 그렇게 어설프면서도 분주하게 시작됐다.

인천공항 2터미널에서는 이번 여행을 함께할 일행들과 만났다.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고, 반가운 인사를 나눈 뒤 출국 수속을 마쳤다. 오후 1시 40분, 드디어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하지만 또 한 번의 해프닝이 있었다. 내가 좌석을 잘못 앉은 탓에 세 명의 다른 승객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다른 자리에 앉게되었다. 다행히 이륙 전에 잘못을 알아차리고 제자리를 찾아 무사히 출발.
14시간 가까운 긴 비행 끝에 밀라노에 도착했다. 저녁 9시의 말라노는 해가 저물기 직전이였고 기온은 30도로 무척 더웠다.

입국 심사 줄은 생각보다 길었고, 1시간 가까이 기다려야 했다. 공항 밖으로 나와 Hertz에서 렌터카를 픽업해 첫날 밤을 보낼 숙소로 향했다. 숙소는 조용한 외곽에 있었고, 초여름 밤의 공기는 공항보다 선선했다.
그런데 또 하나의 소소한 난관. 문이 열리지 않았다. 우리 손에 쥐어진 열쇠는 이 문에 맞지 않았고, 당황스러운 침묵 끝에 J형이 미리 전달받았던 키박스 번호를 기억해냈다. 덕분에 문은 열렸고, 우리는 무사히 숙소에 입실했다.
짐을 내려놓자마자 J형과 나는 근처 까르푸에 들렀다. 물과 음료, 그리고 다음날 아침을 위한 빵과 과일을 몇 가지 담았다. J형은 비행기 안에서부터 기대하던 시원한 맥주를 찾아다녔으나 맥주는 보이지 않았고 겨우 구석 냉장고에 있던 살짝 언 진저맥주 두 병을 들고 계산대로 향했다. 그런데 계산대 직원이 고개를 저었다. 처음엔 우리를 미성년자로 착각했나 했지만, 알고 보니 밤 10시 이후에는 술 판매가 금지되어 있었다. 매장안에 맥주를 찾기어려웠던 이유를 이런 규정의 차이에서 비롯된, 조금은 우스운 착각이었다.
숙소로 돌아와 하루의 짐을 풀고, 각자의 방으로 흩어져 첫날 밤을 맞이했다. 몸은 피곤했지만, 밀라노의 공기 속엔 낯선 기대감이 은근히 깃들어 있었다. 그렇게, 우리 여행의 첫날이 조용히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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