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현 “너무 괜찮다”

2025년 08월 17일

너무 괜찮다

박세현

너무 괜찮다 자고 일어나면 다 괜찮다 어젯밤 불던 바람소리도 바람을 긋고 간 빗소리도 괜찮다 보통 이상인 감정도 보통에 미달한 기분도 괜찮다 자고 일어나면 정말 괜찮다 웃어도 괜찮고 울어도 괜찮다 웃지 않아도 괜찮고 울지 않아도 괜찮다 유리창에 몸을 밀어 넣은 빗방울이 벗은 소리만으로 내게 오던 그 시간 반쯤 비운 컵라면을 밀어놓고 빗소리와 울컥 눈인사를 나누어도 괜찮다 너무 괜찮다
Image from Pixabay

이 시를 읽으면, 표면적으로는 모든 것이 '괜찮다'라고 말하지만, 과장되게 '너무'를 강조한 점이나 '괜찮다'를 반복하는 표현 속에서 오히려 전혀 괜찮지 않은 마음이 느껴지는 것 같다. 누군가와 이별한 뒤에, 마음이 허전하고 무너져 내리지만 스스로를 다독이기 위해 계속 '괜찮다'라는 말을 되뇌는 것 같다.

바람소리, 빗소리, 창가에 맺힌 빗방울까지도 괜찮다고 말하지만 그 소리와 풍경 속에는 이별의 공허함이 스며 있다.

겨우 먹다가 목이 메어 먹지 못하고 반쯤 비워둔 컵라면처럼, 삶의 자리가 텅 비어 있는 듯하다. 웃어도 괜찮고 울어도 괜찮다는 말은, 사실 웃음과 울음 사이에서 흔들리는 마음의 고백처럼 들린다.

“괜찮다”라는 말이 단순한 위로를 넘어, 슬픔을 정직하게 감싸는 힘을 가진다는 것이다. 자기 마음을 억지로 밝히려 하지 않고 오히려 괜찮다고 되풀이하면서, 괜찮지 않은 내면의 깊이를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괜찮다'로 포장한 슬픈 감정을 안겨주는 시.

이 시, 너무 괜찮다.

관련 글

도종환 “인연”

인연 도종환 너와 내가 떠도는 마음이었을 때 풀씨 하나로 만나 뿌린 듯 꽃들을 이 들에 피웠다 아름답던 시절은 짧고 떠돌던 시절의 넓은 바람과 하늘 못 잊어 너 먼저 내 곁을 떠나기 시작했고 나 또한 너 아닌 곳을 오래 헤매었다 세월이 흐르고 나도 가없이 그렇게 흐르다 옛적 만나던...

더 보기...

정유찬 “살아있는 날엔”

살아있는 날엔 정유찬, 「행복한 여운」 사랑은 표현하지 않으면 환상이고 슬퍼도 울 수 없으면 고통이며 만남이 없는 그리움은 외로움일 뿐 표현되지 못한 감정은 아쉬운 아픔이 되고 행동이 없는 생각은 허무한 망상이 된다. 숨 쉬지 않는 사람을 어찌 살았다 하며 불지 않는 바람을 어찌...

더 보기...

공석진 “이별이 슬픔에게”

이별이 슬픔에게 공석진 이별이 슬픔에게 말하네 울지 마라 울지 마라 헤어짐은 절망이 아니다 차오르는 슬픔아 차라리 날선 시선으로 울컥울컥 심장을 찔러다오 무력한 자존심이 바닥까지 비워지면 흐뭇하게 가슴을 내어주마 속절없는 상처야 단단히 아물어라 다가올 그리움 아프지 않게 Image...

더 보기...
댓글 0개
댓글 작성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