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두르지 마라
일찍 핀 꽃은
다른 꽃이 피기도 전에 진다.
불꽃은 활활 타오를수록
더 빨리 사그라진다.
올라간 만큼
박살나는 능금을 보라.
가을 들판에 고만고만하게
키를 맞춘 벼들은
태풍 앞에서도 의연하다.
너무 앞서 나가지 마라.
– 한경옥 “욕심”
이러 저러한 일로 오늘도 마음이 조급하다. 그러다가 이 시를 읽으니 곧 차분해진다. 시 속의 이미지는 단순하면서도 직관적이라서, 시에 익숙하지 않은 나도 쉽게 다가갈 수 있다. ‘일찍 핀 꽃’이나 ‘불꽃’, ‘능금’, ‘가을 들판의 벼’ 같은 구체적인 장면들이 차례로 등장하면서, 자연의 질서가 사람의 삶과 그대로 이어져 있다는 걸 느끼게 한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고만고만하게 키를 맞춘 벼들은 태풍 앞에서도 의연하다’라는 구절이다. 보통 우리는 크고 화려하고 먼저 눈에 띄는 것을 부러워하지만, 이 시는 오히려 조화롭고 겸손한 모습이 오래 버틴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서두르지 말고, 앞서 나가려 애쓰지 말라는 말이 단순한 교훈을 넘어서, 자연의 풍경 속에서 스스로 증명되는 것처럼 다가온다.
이 작품은 “어려운 해석 없이 바로 마음에 스며드는 시”라고 할 수 있다. 인생의 속도를 조절하라는 메시지가, 강한 논리나 복잡한 상징 대신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장면들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읽고 나면 묘하게 안도감이 든다. 너무 앞서지 않아도, 내 계절이 올 때 꽃은 피고 열매는 맺힌다는 믿음을 건네주기 때문이다.
그래, 나 혼자 미리 걱정하고 조급하게 판단하지 말자. 앞서가지 말고 차분하게 기다려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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