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민은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연민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약하고 감상적인 연민으로, 남의 불행을 보고 느낀 괴로운 충격으로부터 가능한 빨리 벗어나려는 조급한 마음입니다. 다른 하나는 감상적이지 않은, 창조적인 연민입니다. 이 연민은 인내하며 참으면서 자기의 힘이 한계에 부딪칠 때까지, 아니 그 이상까지 견디기로 결심하는 것, 그것이 자기의 임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 슈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 『연민(초조한 마음,Ungeduld des Herzens)』
이 문장은 슈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의 장편소설 연민(이은화 역, 지식의 숲, 223~224쪽)의 핵심 인물 중 한 명인 의사 콘도르(Dr. Condor)가 주인공 호프밀러(Hofmiller)에게 하는 말이다. 호프밀러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절의 젊은 장교로, 우연히 저택의 파티에 초대되어 에디트(Edith)라는 다리를 다친 소녀를 만나게 된다. 그녀는 병으로 하반신이 마비되어 휠체어에 의존해 살아간다.
처음에 호프밀러는 그녀의 불행을 모른 채 춤을 요청했다가 충격을 받고 죄책감을 느낀다. 그래서 그녀에게 자주 찾아가 위로하고, 산책을 시켜주며, 그녀의 감정을 ‘돌본다’. 그러나 그의 행동에는 진정한 이해보다는 ‘불편함을 피하려는 연민’이 숨어 있다. 그는 그녀의 애정을 받아들이기 보다는, 자기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는 안도감 속에 머문다.
이를 간파한 인물이 바로 의사 콘도르이다. 콘도르는 에디트를 오랫동안 치료해온 사람으로, 인간의 고통과 타인의 감정 사이의 섬세한 균형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그는 호프밀러에게 이렇게 말한다. “연민은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연민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그는 이 말을 통해 호프밀러에게 경고한다. 당신이 느끼는 연민이 진정한 사랑이나 이해가 아니라, 자기 감정의 불편함을 덜기 위한 감상적 반응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콘도르는 호프밀러에게 감정의 책임을 가르치려 한다. 진정한 연민은 타인의 고통을 함께 짊어지고, 그 고통을 통해 행동을 바꾸는 일이다. 그러나 호프밀러는 그 경고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결국 에디트의 비극적 운명을 맞닥뜨린다.
츠바이크는 이 장면을 통해 인간 감정의 양면성을 드러낸다. 그는 “선한 의도”조차 타인을 파괴할 수 있다고 말한다.
호프밀러는 악인이 아니었다. 그는 다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던’ 평범한 인간이었다. 그러나 감상적 연민은 상대의 고통을 존중하지 않고, 그 고통을 자신의 도덕적 무대 위에서 연출하는 감정으로 만든다. 호프밀러는 에디트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양심을 구제하기 위해 그녀 곁에 머물렀다. 그의 연민은 따뜻했지만, 불안했다. 그 불안은 결국 그녀에게 상처로 돌아왔다. 콘도르의 말은 인간의 마음 깊은 곳을 향한 일종의 거울이다.
츠바이크는 바로 이 점에서 ‘창조적인 연민’을 강조한다. 그것은 타인의 고통 속에서 도망치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물며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내는 연민이다.
이 문장은 우리에게 감정의 진실을 묻는다.
주변의 누군가에게 향하는 연민이 눈물이 아니라 머무름이고, 행동이며, 책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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