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llacies do not cease to be fallacies because they become fashions.”
– G.K. Chesterton, Illustrated London News, April 19, 1930
“허위는 유행이 된다고 해서 허위가 아닌 것이 되지 않는다.”
– G.K. 체스터턴, 《일러스트레이티드 런던 뉴스》, 1930년 4월 19일
이 문장은 영국의 사상가이자 수필가 길버트 키스 체스터턴(Gilbert Keith Chesterton, 1874–1936)이 Illustrated London News에 기고한 칼럼에서 한 말이다. 당시 유럽은 근대 합리주의의 낙관과 기술 문명의 발전 속에서, 일종의 ‘사상적 유행’이 진리처럼 소비되던 시기였다. 체스터턴은 그런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유행의 외피를 두른 오류는 여전히 오류”임을 경고했다.
이 문장은 논리적 오류(fallacy)에 대한 철학적 경구이면서, 사회 비판의 문장이다. 체스터턴이 말한 ‘fallacy’는 단순한 논리적 착오가 아니라,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옳다고 믿는 잘못된 생각의 구조를 가리킨다. 그리고 ‘fashion’은 여기서 단순히 옷의 유행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사조·이념·도덕의 흐름을 상징한다. 즉, 많은 사람이 그것을 받아들인다고 해서, 혹은 시대가 그것을 멋지다고 추앙한다고 해서, 그 생각이 진리로 바뀌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체스터턴은 인간이 ‘다수의 동의’를 근거로 믿음을 정당화하려는 습관을 비판했다. 그의 말은, “집단적 착각은 여전히 착각이다”이라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좋아요(Like)’와 ‘조회수(View)’의 시대에 살고 있다. 사람들은 진실보다 ‘반응’을 택하고, 사실보다 ‘속도’를 선택한다.
가짜뉴스는 이런 욕망의 토양 위에서 자라난다. 누군가의 분노를 자극하거나 감정에 불을 붙이는 문장은, 알고리즘에 의해 빠르게 증폭되고, 마치 ‘진실’처럼 떠오른다. 그러나 체스터턴의 말처럼, 유행이 허위를 진리로 바꿀 수는 없다. 수천 개의 ‘좋아요’가 붙어도, 수만 번 공유되어도, 그 내용이 거짓이라면 그것은 여전히 오류이며, 진실의 자리에 설 수 없다.
가짜뉴스가 무서운 이유는 단지 거짓말이어서가 아니라, 그 거짓이 다수의 믿음으로 변하는 순간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믿으니까 맞겠지.” 이 단순한 심리가 인터넷을 움직이는 거대한 엔진이 되었다. 하지만 체스터턴은 이 믿음을 거꾸로 뒤집는다. 그는 말한다. “많은 사람이 믿는다고 해서 그것이 옳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다수가 믿는다는 이유로 우리는 그것을 의심해야 한다.”
SNS의 세계는 감정의 폭풍이다. 분노, 연민, 공포, 쾌감이 초 단위로 소비된다. 그 속에서 ‘논리적 오류(fallacy)’는 더 이상 틀린 것이 아니라, ‘공유될 만한 이야기’로 변한다. 또한 오늘의 인터넷 세계에서 ‘진리의 외로움’을 이야기한다. 진리는 화려하지 않다. 그것은 늘 군중의 뒤편, 소음이 가라앉은 구석에 조용히 앉아 있다.
이 경고는 디지털 시대의 비판적 사고를 향한 나침반이 된다. 허위의 유행은 늘 매혹적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생각할 필요를 없애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유를 멈춘 대중은, 진리를 잃고 오락의 파도에 몸을 맡긴다.
체스터턴의 말은 결국 양심의 좌표를 가리킨다.
“좋아요”보다 양심의 떨림을 따르라고,
조회수보다 침묵 속의 성찰을 택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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