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 뒤를 돌아보자
12월에는 등 뒤를 돌아보자
앞만 보고 달려온 동안
등 뒤의 슬픔에 등 뒤의 사랑에
무심했던 시간들을 돌아보자
눈 내리는 12월의 겨울나무는
벌거벗은 힘으로 깊은 숨을 쉬며
숨 가쁘게 달려온 해와 달의 시간을
고개 숙여 묵묵히 돌아보고 있다…
그립고 눈물 나고 사랑하는 것들은
다 등 뒤에 서성이고 있으니
그것들이 내 등을 밀어주며
등불 같은 첫 마음으로
다시 나아가게 하는 힘이니
12월에는 등 뒤를 돌아보자
차가운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12월, 박노해 시인의 이 시를 읽으니 바쁘게 뛰던 심장이 잠시 숨을 고르는 기분이다. 우리는 늘 무언가를 쫓아 앞만 보고 달려가기 바쁘다. 성과나 목표, 즐기고 먹고 놀 것들 같은 것에 매달려 정작 내 등 뒤에 무엇이 남겨졌는지, 내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잊고 살 때가 참 많다. 시인은 그런 우리에게 잠시 멈춰서 등 뒤를 돌아보자고 부드럽게 제안한다.
벌거벗은 채로도 깊은 숨을 쉬는 겨울나무의 이미지가 참 인상 깊게 다가온다. 화려한 잎을 다 떨구고도 묵묵히 지나온 시간을 견디며 서 있는 나무처럼, 우리도 숨 가빴던 지난 일 년을 조용히 안아주어야 할 것 같다. 시를 읽으며 새삼 깨닫게 되는 건, 우리가 소홀히 했던 슬픔이나 사랑, 그리고 눈물 나게 그리운 것들이 결코 사라져 버린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것들은 여전히 내 등 뒤에서 서성이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부분은 등 뒤에 있는 그 과거의 기억들이 단순히 지나간 흔적이 아니라, 나를 다시 나아가게 하는 ‘힘’이라는 대목이다. 마치 누군가 따뜻한 손길로 지친 내 등을 가만히 밀어주는 느낌이 든다. 처음 품었던 그 순수한 마음, ‘첫 마음’을 다시 불 지피게 하는 연료가 바로 우리가 지나온 시간 속에 있었던 것이다. 이 시를 통해 12월은 단순히 한 해의 끝이 아니라, 등 뒤의 사랑을 힘입어 다시 시작할 준비를 하는 따뜻한 쉼표 같은 시간이라는 위로를 받는다.
올해 내 등 뒤에 남겨진 것은 무엇일까?
나도 가만히 뒤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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