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이도 “꿈꾸는 겨울”

2025년 12월 14일

꿈꾸는 겨울

박이도

겨울은 침묵한다
땅속에 씨앗을 묻어두고

깊은 잠에 빠진다
풍경으로 날리는

눈발의 무게만큼
바람을 놓아준다

아, 겨울은 심심할까
얼어붙은 시간

저녁을 나는 기러기떼
아무도 말벗이 없다
눈발이 녹아

땅 속의 씨앗
소중한 생명이 솟아날 때까지는

겨울은 꿈꾸고 있다

박이도 시인의 〈꿈꾸는 겨울〉을 천천히 읽어 내려가니, 차가운 바람 속에 차가워진 손을 덥혀는 따뜻한 입김이 느껴진다.

우리는 흔히 겨울을 멈춤의 시간, 혹은 죽음의 계절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이 온통 잿빛으로 변하고 매서운 추위가 살을 파고들 때, 겉으로 보이는 풍경은 삭막하기 그지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인은 그 차가운 침묵을 단순한 정지가 아닌 ‘깊은 잠’으로 바라보았다. 땅속에 씨앗을 묻어두고 잠든다는 표현에서, 겨울이 품고 있는 거대한 모성애와 생명력을 발견하게 된다.

눈발이 날리고 기러기가 떠나는 풍경은 얼핏 외롭고 쓸쓸해 보인다. “심심할까”, “아무도 말벗이 없다”라는 구절에서는 겨울이 견뎌야 하는 고독의 무게가 느껴져 마음이 스잔하다. 그러나 그 고독은 무의미한 외로움이 아니다. 얼어붙은 시간 속에서 눈발이 녹아 땅속 깊이 스며드는 과정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치열하게 생명을 틔우기 위한 준비의 시간임을 깨닫게 한다.

결국 겨울의 침묵은 봄을 위한 가장 평화스러운 꿈이다. 소중한 생명이 솟아날 때까지 기다려주는 그 인내와 포용력이 있기에 우리들의 봄은 더욱 찬란할 것이다.

지금 당장 성과가 보이지 않거나 외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들에게, 지금은 멈춘 것이 아니라 내면의 씨앗을 키우는 소중한 ‘꿈꾸는 시간’이라는 따뜻한 위로를 건네준다.

겨울은 단순히 춥고 긴 계절이 아니라, 생명을 품고 있는 따뜻한 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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