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지우 “너를 기다리는 동안”

너를 기다리는 동안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데서 지금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 황지우

황지우 시인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은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을 법한 ‘기다림’이라는 보편적인 정서를 아주 섬세하고 깊이 있게 그려낸 시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에 먼저 도착해 그를 기다리는 짧은 시간 동안, 화자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변화가 마치 눈앞에 그려지듯 생생하게 다가온다.

시의 초반부에서는 기다리는 사람의 예민해진 감각들이 돋보인다. 온 신경이 너에게로 향해 있어서,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 소리가 내 가슴을 쿵쿵거리게 만들고,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소리 하나까지도 모두 네가 오는 소리처럼 느껴진다. 기다림이 주는 설렘과 동시에 불안한 긴장감을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라는 표현으로 집약하여 보여줄 때, 그 절실한 마음에 깊이 공감하게 된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순간적으로 모두 ‘너’로 보였다가 이내 실망으로 바뀌는 과정의 반복은 기다림이 주는 고통을 더 구체적으로 느끼게 한다.

하지만 이 시가 단순히 기다림의 애달픔만을 노래했다면 이토록 긴 여운을 주지는 못했을 것이다. 시의 후반부에서 화자는 놀라운 인식의 전환을 보여준다. 오지 않는 너를 하염없이 기다리던 수동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라고 선언한다. 이는 물리적인 이동을 의미한다기보다는, 나의 마음과 영혼이 이미 너를 향해 마중 나가고 있다는 능동적인 사랑의 태도를 의미한다.

아주 먼 곳에서 오랜 세월을 다해 오고 있는 너를, 나 역시 이곳에서 너를 향해 걸어가며 맞이하고 있다는 이 아름다운 역설은 가슴 뭉클한 감동을 선사한다. 결국 진정한 사랑이란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기다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는 과정임을 시인은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기다림의 시간이 단순히 흘러가 버리는 공백이 아니라, 너에게로 가는 가장 적극적인 행동이 될 수 있다는 깨달음이 마음을 따뜻하게 채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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