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하 “겨울에”

2026년 01월 09일

겨울에

마음 산란하여
문을 여니
흰눈 가득한데
푸른 대가 겨울 견디네

사나운 짐승도 상처받으면
굴속에 내내 웅크리는 법

아아
아직 한참 멀었다
마음만 열고
문은 닫아라.

– 김지하 –

김지하 시인의 「겨울에」는 마음의 소란스러움을 가라앉히기 위해 밖을 내다본 이의 시선을 따라가며 삶의 깊은 지혜를 건네준다. 시의 첫머리에서 시인은 산란한 마음을 안고 문을 연다. 그곳에는 온 세상을 덮은 흰 눈과 그 추위 속에서도 푸르름을 잃지 않는 대나무가 있다. 하얀 눈과 푸른 대나무의 시각적 대비는 시련 속에서도 변치 않는 생명력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이어지는 구절에서 화자는 상처 입은 짐승이 굴속으로 몸을 숨기는 행위를 떠올린다. 이는 단순히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치유하고 다시 일어서기 위해 필요한 인고의 시간임을 암시한다. 사나운 짐승조차 아픔 앞에서는 웅크릴 줄 안다는 대목은, 우리에게도 잠시 멈추어 서서 자신을 돌볼 시간이 필요함을 일깨워준다.

마지막 단락의 “마음만 열고 문은 닫아라”라는 표현은 이 시의 백미다. 세상으로 향하는 문은 닫되, 내면을 향한 마음의 창은 활짝 열어두라는 역설적인 가르침이다. 아직 시련을 견뎌낼 준비가 덜 된 자신을 무리하게 세상으로 내몰기보다, 고요함 속에서 내실을 기하며 추운 겨울을 견디는 대나무처럼 단단해지기를 권하는 따뜻한 위로가 느껴진다.

이 시는 혹독한 계절을 지나는 이들에게 조용히 다가와 손을 잡아준다. 서두르지 말고, 자신의 상처를 충분히 들여다보며 단단해질 시간을 가지라는 시인의 목소리는 차가운 겨울 공기 속에서도 온기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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