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유진 “살다가 살다가”

2026년 01월 11일

살다가 살다가


살다가 힘든 일이 생기거든
누구를 탓하지 말거라
이미 생긴 일이거늘
어찌 하겠느냐

살다가 울 일이 생기거든
누구를 원망 말고 실컷 울어보아라
울고 나면 속이라도
시원하지 않겠는가

살다가 이별할 일이 생기거든
너무 슬퍼하지 말아라
인연은 만났다가
헤어지기도 하는 것

살다가 사랑할 일이 생기거든
밀고 당기는 시간을 줄이거라
사랑의 실타래가 항상 질기지 않으니
적당히 밀고 당기려무나

살다가 행복한 일이 생기거든
너무 잡으려 애쓰지 말거라
무엇이든 잡으려 하면 달아나고
꽉 쥐고 있다고 내 것이 아니더라


– 최유진, <행복이 따로 있나요> 中

Image by Pixabay

최유진 시인의 「살다가 살다가」는 굴곡진 삶의 여정 앞에서 우리가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 일러준다. 시인은 인생에서 마주하는 고통, 슬픔, 이별, 사랑, 그리고 행복이라는 다섯 가지 감정을 차례로 짚어가며, 집착하기보다는 흘려보내고 거부하기보다는 수용하는 삶의 지혜를 건넨다. 이 시를 읽고 있으면 마치 세상을 먼저 경험한 어른이 곁에 앉아 등을 토닥이며 “괜찮다, 다 그런 것이다”라고 위로해 주는 듯한 기분이 든다.

첫 번째와 두 번째 단락에서 시인은 고난과 슬픔을 대하는 태도를 말한다. 이미 벌어진 일을 남의 탓으로 돌리거나 억지로 참아내지 말고, 그저 받아들이고 울고 싶을 때는 실컷 울라고 조언한다. 이는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미덕인 세상에서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대면하는 것이 진정한 치유의 시작임을 일깨워준다. 눈물을 흘리고 난 뒤의 시원함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정서적 공간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이별과 사랑에 대한 통찰 역시 깊은 울림을 준다. 인연의 만남과 헤어짐을 자연의 섭리처럼 당연하게 받아들이라는 대목에서는 삶의 유한함을 긍정하는 태도가 느껴진다. 특히 사랑할 때 ‘밀고 당기는 시간’을 줄이라는 조언은 참으로 현실적이면서도 애틋하다. 사랑의 실타래가 영원히 질기지 않다는 표현은 우리에게 주어진 사랑의 시간이 생각보다 짧을 수 있음을 경고하며, 계산하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의 진심에 집중하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마지막으로 행복을 대하는 태도는 이 시의 백미다. 우리는 흔히 행복을 소유하려 하고 영원히 붙잡아두려 애쓰지만, 시인은 잡으려 할수록 달아나는 것이 행복의 본질이라고 말한다. 꽉 쥐고 있다고 해서 내 것이 되지 않는다는 역설적인 진리는, 행복이란 소유하는 결과물이 아니라 삶의 과정 속에서 잠시 머물다 가는 손님 같은 것임을 깨닫게 한다. 전체적으로 이 시는 삶을 통제하려 하기보다 순리대로 흐르게 두는 법을 가르쳐주며, 지친 마음에 고요한 평온을 선물한다.

0개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