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하 “눈 오는 날”

2026년 01월 13일

눈 오는 날

눈 오는 날엔
사람과 사람끼리 만나는 게 아니라
마음과 마음끼리 만난다.

그래서 눈 오는 날엔
사람은 여기에 있는데
마음은 딴 데 가 있는 경우가 많다.

눈 오는 날엔
그래서 마음이 아픈 사람이 많다.
- 이정하, 『그대 굳이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 중 -
Image from Pixabay

눈이 내리면 세상은 온통 하얗게 변하고, 그 포근한 풍경 속에 우리는 평소보다 조금 더 감성적인 사람이 된다.

눈이 오는 날, 우리는 누군가 만나기를 기대한다. 이 시는 단순히 마주하는 것을 넘어 마음이 먼저 움직인다는 점을 포착했다. 하얀 눈송이가 내리는 것을 보고 있으면 잊고 지냈던 누군가가 문득 떠오르기도 하고, 지금 곁에 없는 사람에게 마음이 먼저 달려가기도 한다. 그래서 몸은 비록 이곳에 머물러 있지만, 내 소중한 진심은 이미 멀리 있는 누군가에게 닿아 있는 셈이다.

작가는 이런 상태를 '마음이 아프다'고 표현했는데, 이는 날카로운 통증이라기보다 사랑하는 대상을 향한 애틋하고 몽글몽글한 그리움에 가깝다. 눈이 내리는 날의 차가운 감각이 오히려 우리를 더 따뜻한 감정의 세계로 연결해 준다는 사실이 참 흥미롭다. 펑펑 쏟아지는 눈발 사이로 내 마음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가만히 살펴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리움을 외면하지 않고 그저 마음이 가는 대로 두는 것, 그것이 눈 오는 날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서정적인 사치가 아닐까 싶다.

관련 글

공석진 “이별이 슬픔에게”

이별이 슬픔에게 공석진 이별이 슬픔에게 말하네 울지 마라 울지 마라 헤어짐은 절망이 아니다 차오르는 슬픔아 차라리 날선 시선으로 울컥울컥 심장을 찔러다오 무력한 자존심이 바닥까지 비워지면 흐뭇하게 가슴을 내어주마 속절없는 상처야 단단히 아물어라 다가올 그리움 아프지 않게 Image...

더 보기...

정일근 “새벽과 아침사이”

새벽과 아침사이 정일근 귀신으로 잠들었다 사람으로 눈을 뜨는 시간 어둠과 빛 사이 잠깐 저 푸른 시간, 젓대와 바람 사이에 놓인 갈대청 같은, 하늘이 펼쳐주는 셀로판 한 장 같은, 시간이 잠시 멈추며 숨을 쉬는 횡경막 같은, 내가 하루 중 제일 먼저 그 사람을 생각하는 그 때....

더 보기...

박노해 “이 무서운 사랑”

이 무서운 사랑 박노해 봄날 오후, 카페테라스에서 마치 사랑을 시작한 듯한 남녀가 스마트폰도 들여다보지 않고 서로의 눈과 입술과 목선을 어루만지듯 황홀하게 바라보고 있다 3초 10초 15초 바로 그 순간, 이 15초 동안, 어떤 무서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두 남녀는 15초간 흘러갔고...

더 보기...
댓글 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