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스테르담(Amsterdam)
1998년 부커상 수상작인 이언 매큐언(Ian McEwan)의 소설 암스테르담(Amsterdam)은 몰리 레인(Molly Lane)의 죽음 이후, 그녀와 관계를 맺었던 인물들의 욕망, 우정, 복수, 정치적 이해관계가 서로 충돌하며 파국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다.
조지 레인 George Lane
부유한 출판업자이자 몰리의 남편이다. 까탈이 심하고 병적으로 소유욕인 강한 남자. 아내 몰리의 죽음 이후에도 그녀의 기억을 소유하려 하며, 몰리가 찍은 줄리언의 사진을 통해 버넌을 움직이고 복수의 판을 짠다.
클라이브 린리 Clive Linley
유명 작곡가이자 1968년 대학생때 몰리를 처음 만나 2번의 동거를 한 옛 연인이다. 창작의 몰입으로 소신과 다른 부당한 행동을 저지른다. 버넌의 오랜 친구이지만, 도덕적 판단과 예술가적 자의식이 충돌하면서 관계가 파국으로 향한다.
버넌 핼리데이 Vernon Halliday
신문 편집장이자 몰리의 옛 연인이다. 1974년 파리에서 1년간 몰리와 동거. 신문사 Judge내에서 모난 데가 없고 장단점이 없는사람이었지만, 줄리언의 사적인 사진을 보도하려 하며, 공익이라는 명분 뒤에 숨은 명예욕과 경쟁심을 드러낸다.
몰리 레인 Molly Lane
소설이 시작될 때는 이미 죽은 인물이지만, 그녀의 기억과 관계, 그리고 남겨진 흔적이 다른 인물들의 욕망과 위선을 드러내는 핵심 축이 된다. 재치 있는 레스토랑 평론가, 사진작가, 대담한 정원사, 외무장관(줄리언 가머니)의 정부였다. 46세에도 옆으로 재주넘기가 가능한 건강했던 여성. 모두에게 사랑받은 여인.
줄리언 가머니 Julian Garmony
외무장관으로 노련한 정치인이다. 몰리와의 관계가 있었고, 그녀가 남긴 사진 때문에 정치적 위기에 놓인다. 은밀한 사생활과 공적 권력이 충돌하는 인물이다.
로즈 가머니 Rose Garmony
줄리언의 아내. 소아과 전문의. 남편의 스캔들을 방어하며, 사적인 문제를 정치적 이미지 관리의 문제로 전환시키는 역할을 보여준다.
모바일에서 관계를 빠르게 읽는 방법
- 조지 레인 - 몰리 레인: 남편과 죽은 아내의 관계
- 몰리 레인 - 클라이브 린리: 과거의 연인 관계
- 몰리 레인 - 버넌 핼리데이: 과거의 연인 관계
- 클라이브 린리 - 버넌 핼리데이: 오랜 친구였지만 적대와 파국으로 변하는 관계
- 조지 레인 - 버넌 핼리데이: 사진을 통해 버넌을 자극하고 움직이게 만드는 관계
- 버넌 핼리데이 - 줄리언 가머니: 정치 스캔들 기사로 얽히는 관계
- 줄리언 가머니 - 로즈 가머니: 부부이자 정치적 방어를 함께 수행하는 관계
관계의 핵심 흐름
- 몰리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남은 인물들의 욕망을 드러내는 출발점이다.
- 클라이브와 버넌의 우정은 도덕, 자존심, 경쟁심 때문에 붕괴한다.
- 조지는 몰리의 기억과 사진을 통해 다른 인물들을 흔든다.
- 줄리언의 사진은 언론, 정치, 윤리의 경계를 시험하는 장치가 된다.
읽을 때 주목할 점
이 관계도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누가 누구와 관계를 맺었는가가 아니다. 몰리의 죽음 이후 각 인물이 자신의 욕망을 어떤 명분으로 포장하는지, 그리고 그 명분이 어떻게 위선과 파멸로 이어지는지를 함께 보는 것이 핵심이다.
이언 매큐언의 암스테르담(Amsterdam) 리뷰
* 책에 대한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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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은이: 이언 매큐언
- 옮긴이: 박경희
- 출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24
- 출판연도: 2023년02월28일
- 원제 : Amsterdam
1. 작가 소개
이언 매큐언(Ian McEwan)은 1948년 영국 올더숏(Aldershot)에서 태어난 영국 작가다. 그는 서식스 대학교(University of Sussex)와 이스트 앵글리아 대학교(University of East Anglia)에서 문학을 공부했고, 초기에는 어둡고 기괴한 이야기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첫 소설집 첫사랑, 마지막 의식(First Love, Last Rites)은 1975년에 발표되었고, 이후 시멘트 정원(The Cement Garden), 침대 시트 사이에서(In Between the Sheets) 같은 작품을 통해 폭력, 성, 욕망, 가족의 붕괴 같은 불편한 주제를 집요하게 다뤘다. 이 시기 매큐언은 섬뜩한 상상력 때문에 이언 매커브(Ian Macabre)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다. (Encyclopedia Britannica)
암스테르담(Amsterdam)은 1998년에 발표되어 그해 부커상(Booker Prize)을 받았다. 부커상 재단은 이 작품을 사랑, 우정, 정치, 언론 윤리, 안락사가 뒤섞인 어두운 희극으로 소개하며, “연약한 우정이 증오와 복수로 내려가는 이야기”라고 설명한다. (The Booker Prizes)
매큐언의 힘은 거대한 사건보다 작은 판단의 균열을 파고드는 데 있다. 그의 인물들은 대체로 똑똑하고 세련되고 말도 잘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자기중심적이다. 암스테르담은 바로 그 점을 보여준다. 이 소설의 무서움은 스스로를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믿는 이들이 너무 쉽게 괴물이 된다는 데 있다.
2. 내용 요약
이 소설은 사진작가 몰리 레인(Molly Lane)의 장례식에서 시작된다. 몰리는 한때 자유롭고 매혹적인 여성이었지만, 병으로 정신과 몸이 무너진 채 죽음을 맞는다. 그녀의 장례식장에는 과거의 연인들이 모두 모인다. 유명 작곡가 클라이브 린리(Clive Linley), 신문 저지(Judge)의 편집장 버넌 핼리데이(Vernon Halliday), 정치인 줄리언 가머니(Julian Garmony), 그리고 몰리의 남편이자 부자인 사업가 조지 레인(George Lane). (이 정도의 남성들이 연인이였고, 애인이고 남편이라면 대단히 매력적인 여성이었을 듯!!!) 클라이브와 버넌은 오랜 친구다. 둘은 몰리의 죽음을 보며 자신들도 그런 식으로 무너질지 모른다는 공포를 느끼고, 서로에게 심각한 병에 걸려 인간다운 삶을 잃게 되면 죽음을 도와달라는 약속을 한다.
하지만 이 약속은 우정의 증거라기보다 자기 연민과 자기 보호의 출발점이 된다. 버넌은 조지에게서 가머니의 은밀한 사진을 받는다. 그는 이를 공익 보도라고 포장하지만, 실제로는 신문 판매와 정치적 영향력 확대를 노린다.
한편 클라이브는 새 교향곡을 완성하기 위해 산에 오른다. 그는 그곳에서 한 여성이 위험에 처한 장면을 목격하지만, 떠오르는 음악적 영감을 잃고 싶지 않아 외면한다. 그는 자신에게 음악이 더 중요했다고 믿지만, 그 순간 그의 예술은 책임을 피하는 핑계가 된다. 버넌은 이 사실을 알고 클라이브를 비난하고, 클라이브는 버넌의 폭로 보도를 비난한다. 두 사람은 서로의 비윤리를 정확히 보면서도 자기 잘못은 보지 못한다.
가머니의 아내 로즈 가머니(Rose Garmony)는 기자회견에서 남편을 감싸고, 버넌의 계획은 실패한다. 버넌은 자리에서 밀려나고, 클라이브 역시 음악계에서 위기를 맞는다. 결국 클라이브와 버넌은 암스테르담에서 서로를 파멸로 이끌어간다. 오래된 우정은 윤리의 이름으로 시작해 복수와 자기 정당화의 끝까지 간다.
3. 인상적인 문장들
15 오늘 런던 도심의 기온은 영하 11도라고 했다. 영하 11도라. 세상은 무언가 잘못 돌아가고 있었지만 그건 딱히 신의 존재 탓도 부재 탓도 아니었다.
이 문장은 소설의 분위기를 느끼게 해준다. 많이 차가운 날씨가 비정상적으로 차갑다는 말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이 세상 전체가 어딘가 틀어져 있다는 신호다. 그런데 그 잘못을 신의 탓이나 신의 부재 탓으로 돌리지 않는다는 점이 중요하다. 문제는 초월적인 존재가 아니라 인간 자신의 판단, 욕망, 허영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23~24 다들 그네들이 그토록 멸시하던 정부 아래서 근 십칠 년간 얼마나 큰 부와 영향력을 축적해왔는가. 나의 세대에 대해 말해보자. 그런 에너지, 그런 행운. 전후의 사회복지국가에서 태어나 나라가 주는 젖과 꿀을 먹고 자라고, 부모들이 이룬 소박한 부에 얹혀살다가 곧장 완전 고용의 시대에 돌입한 세대. 새로운 대학들, 화사한 보급판 책들, 로큰롤(rock and roll)의 전성기, 적당할 만큼의 이상 추구. 그들이 타고 올라온 사다리가 부서지고 정부가 갑자기 젖을 떼며 잔소리를 시작했을 때 이들은 이미 안전하게 자리를 잡은 상태였다. 그리고 이제는 구색을 갖추느라 취미와 가치관, 재산을 불리는 데 여념이 없었다.
이 문장은 암스테르담이 단지 두 친구의 파국을 다룬 소설이 아니라, 한 세대의 위선을 풍자하는 소설임을 보여준다. 클라이브와 버넌은 스스로 자유롭고 진보적이며 세련된 사람이라고 믿지만, 사실 그들이 누리는 자유는 이미 안전한 위치를 확보한 뒤의 여유로움이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사람들이 뒤늦게 사다리가 사라지는 것을 보며 도덕과 취향을 향유하는 모습이 씁쓸하게 드러난다.
35~36 우리 인간은 음악적 자질을 타고난 호모 무지쿠스(Homo Musicus)였다. 그러므로 음악에서의 아름다움을 정의하는 것은 인간 본성에 대한 정의를 수반하는 일이며 인간성과 꾸밈없는 소통의 세계를 되찾는 일이기도 하다.
클라이브가 음악을 얼마나 높게 생각하는지 보여주는 문장이다. 그는 음악을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인간 본성에 닿는 고귀한 언어로 본다. 문제는 이 믿음이 너무 커질 때다. 음악을 인간성의 본질로 여기는 생각은 아름답지만, 그 생각이 실제 인간을 외면하는 핑계가 되면 위험해진다. 소설은 예술의 숭고함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숭고함을 내세우는 사람은 언제든 비열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37 이제까지 쓸 만한 아이디어는 놀랍게도 30킬로미터의 산행이 끝나갈 무렵,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을 때 떠오르곤 했다.
창작의 순간은 종종 의도적으로 붙잡으려 할 때보다 몸과 마음이 느슨해질 때 찾아온다. 이 문장은 클라이브의 예술가적 리듬을 잘 보여준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이 문장은 다른 의미를 가진다. 클라이브는 창작의 집중 상태를 너무 소중하게 여기다가 현실의 윤리적 도움을 외면한다. 좋은 아이디어를 끌어내기위한 몰입이 인간적 책임보다 우선할 수 있을까?
38 그들은 너의 몰락을 그럭저럭 관리해줄 수는 있어도 그 몰락을 막지는 못한다. 그러니 멀찌감치서 너 자신이 쇠약해져가는 모습을 주시하라. 그러다가 더는 일을 할 수 없거나 품위 있는 삶이 불가능해졌을 때 스스로 끝을 내라. 하지만 그라고 해서 몰리가 순식간에 도달했던 그 지점을 넘어서지 않을 방법이 있을까. 만약 자살을 시도하지도 못할 만큼 무력해지고 혼란에 빠져 있고, 어리석어진 후라면.
몰리의 죽음은 소설 전체를 움직이는 출발점이다. 클라이브와 버넌은 몰리의 죽음을 보며 늙음, 병, 정신의 붕괴를 두려워한다. 여기에는 인간다운 죽음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있다. 하지만 동시에 이 고민은 자기 자신에 대한 공포로 가득하다. 몰리를 진심으로 애도한다기보다, 몰리의 죽음을 거울 삼아 자기 미래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43 두 시간 전 저지(Judge) 사무실에 도착한 후로 그는 사십 명의 직원과 개별적으로 강도 높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저 대화이기만 한 건 아니었다. 두 건을 빼고는 결정을 내리고, 우선순위를 매기고, 기사를 배당하고, 선택하고, 명령이나 다름없는 의견을 제시했다. 평소와 달리, 그는 이런 권한 행사로도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한없이 멀어져 자신이 그에게 귀를 기울이던 사람들의 합계에 불과한 것처럼 느껴졌다. 혼자가 되는 순간 그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홀로 무슨 생각을 하려 해도 사고의 주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버넌의 의자는 텅 비어 있었다.
버넌은 권력을 가진 편집장이다. 그는 결정을 내리고 사람들을 움직인다. 그런데 혼자가 되면 텅 비어 있다. 이 문장은 버넌의 심리적 상태를 표현한다. 그는 자신의 내면이 아니라 타인의 반응, 조직 안의 위치, 권한 행사로 존재를 확인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가머니 사진 보도도 공익보다 자기 존재감을 회복하려는 행동으로 볼 수 있다.
65 내가 심각한 병에 걸린다고 해보자고, 몰리처럼 말이야. 그래서 악화일로를 걸으면서 끔찍한 실수를 자꾸 저지르게 된다면, 뭐 있잖아, 판단력이 떨어지고, 사물의 이름도, 내가 누군지조차 모르는 그런 상황. 그럴 때 누군가 나를 도와 끝을 내줄 사람이 있는지. 내가 죽을 수 있게 도와줄 사람 말이야. 특히 내가 스스로 결단을 내리거나 손을 쓸 수 없는 시점에 이르렀을 때라면 더 그래. 그러니까, 결국 내 말은 가장 오래된 벗인 자네에게 부탁한다는 거네. 자네가 봐서 달리 방법이 없다고 여겨지는 그런 순간이 오면 나를 도와줘. 할 수만 있었다면 우리가 몰리를 위해서 했을 바로 그런 식으로.
66 물론 자네가 들어준다는 전제하에서 말인데, 그럴 수 있는 방법과 그걸 허용하는 나라가 있어. 때가 되면 나를 비행기에 태워 그곳으로 날아가지. 이건 자네처럼 가까운 친구에게만 부탁할 수 있는, 책임이 무거운 일이야.
이 장면은 클라이브와 버넌의 우정을 가장 진지하게 보이게 만드는 대목이다. 죽음을 도와달라는 부탁은 가볍지 않다. 하지만 상대를 신뢰하고 내뱉은 이 약속은 나중에 끔찍하게 뒤집힌다. 처음에는 품위있는 죽음을 위한 윤리적 합의처럼 보였던 것이, 마지막에는 상대가 끔찍한 실수를 저질러서 죽을 수 있게 도와준다는 구실로 서로를 제거하기 위한 도구가 된다. 매큐언은 선의로 보이는 약속도 인간의 감정이 썩으면 얼마나 쉽게 악용되는지 보여준다.
여기서 암시되는 암스테르담은 품위있는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합리적인 곳으로 등장한다. 두 사람은 약속을 매우 특별한 우정의 증거처럼 말한다. 하지만 뒤늦게 알게 된다. 그들이 말한 책임의 무게는 끝내 감당되지 않는다. 책임이라는 말은 자주 등장하지만, 실제 행동은 책임에서 도망치는 쪽으로 간다.
78 예술가의 자유로운 영혼을 담보로 모든 책임을 벗어버릴 수도 있었지만, 그런 식의 오만은 질색이었다. 클라이브의 친구들 중에는 필요할 때마다 천재라는 으뜸패를 내세우며 여차하면 약속장소에 나타나지 않는 부류가 있었다. 그들의 부재로 인해 어떤 불상사가 벌어진다 해도 그건 단지 직업 성격상 불가피한 일이며 그런 연출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이 부여받은 소명을 더욱 우러러보게 할 뿐이라고 믿었다. 이들은 그중에서도 소설가가 최악이다. 친구와 가족들에게조차 작업시간뿐 아니라 조는 시간, 산책시간을 비롯하여 침묵하는 매 순간과 우울증과 만취상태가 모조리 변명의 여지가 있는, 고도의 목적을 담은 행위라는 믿음을 주려고 집요하게 애쓴다. 클라이브가 보기에 그건 평범함을 감추려는 제스처에 불과했다. 그 역시 예술의 숭고함을 의심치 않았지만 부당한 행동은 예술의 일부가 아니었다. 한 세기에 한두 명 정도 예외는 있을 수 있다. 베토벤(Beethoven) 같은 사람 말이다.
이 문장은 클라이브가 자기 자신을 얼마나 합리적이고 균형 잡힌 예술가로 생각하는지 보여준다. 그는 예술가의 오만을 싫어한다. 예술을 핑계로 무례하게 구는 사람들을 경멸한다. 그런데 바로 그가 나중에 예술을 이유로 타인의 위험을 외면한다. 이 위선적 아이러니가 소설의 핵심이다. 매큐언은 인물이 자기 자신에 대해 하는 말과 실제 행동 사이의 간격을 드러낸다.
83 클라이브는 맞은편의 빈자리를 응시하며 머리에 쥐가 나도록 사회적 관계의 손익분기점을 따지다가 자책감에 빠졌고, 자기도 모르게 불행의 프리즘을 통해 과거를 굴절시키고 물들이고 있었다. 때때로 다른 생각도 하고 한동안 책을 읽기도 했지만 북쪽으로 떠나는 이번 여행의 테마는 바로 이것, 우정에 대한 전반적이고 상세한 재정의였다.
우정이 손익계산의 대상이 되는 순간, 이미 우정은 흔들리고 있다. 클라이브는 버넌과의 관계를 도덕적으로 판단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감정의 손익을 계산한다. 이 문장은 오래된 친구 사이에서도 자존심과 이익, 불쾌감이 쌓이면 관계가 얼마나 쉽게 재정의되는지 보여준다. 우정은 아름다운 이름이지만, 그 안에도 계산은 숨어 있다.
88 비웃어 마땅한 사진들이었고, 실제로 비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클라이브는 어딘지 경외심을 느꼈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다. 우리는 빙산처럼 대부분 물에 잠겨 있고, 눈으로 볼 수 있는 사회적 자아만이 하얗고 냉랭하게 밖으로 솟아 있다. 그리고 여기 수면 아래 희귀한 모습, 한 남자의 은밀한 사생활과 혼돈이 있었다. 그의 위엄은 순수한 환상과 사고를 향한 압도적인 욕구에 의해, 정복할 수 없는 인간의 요소, 정신에 의해 철저히 무너졌다. 클라이브는 처음으로 가머니에게 호의 비슷한 것을 느꼈다.
이 대목은 여기에서 보기 드문 연민의 순간이다. 다만 오래가지 않지만. 가머니의 사진은 우스꽝스럽고 정치적으로 치명적일 수 있다. 하지만 클라이브는 그 안에서 가머니의 이중성과 숨어있는 욕구를 본다. 자신도 공감하기 때문에 호의를 느끼겠지. 우리도 만나는 누군가를 공적 얼굴로만 판단하지만, 사실 대부분은 감춰져 있는 커다란 이면성이 있다. 인간을 이해하려는 순간과 인간을 이용하려는 순간이 너무 가까이 붙어 있다는 것에 씁쓸함을 느낀다.
102 비탈진 바위 꼭대기에 도달했을 때 멜로디가 다시 들려올 것 같아 클라이브는 멈춰 서서 주머니에서 수첩과 연필을 꺼냈다. 슬프기만 한 가락은 아니었다. 그 안에는 쾌활하면서도 거대한 힘에 맞서는 긍정적인 결단, 즉 용기가 깃들어 있었다.
이 장면에서 음악은 정말 아름답게 다가온다. 클라이브가 붙잡으려는 멜로디에는 슬픔만이 아니라 용기가 있다. 아름다운 음악이 떠오르는 순간, 현실에서는 누군가 위험에 처해 있다. 이 문장은 그 모순을 품고 있다.
107 정신적 동요 속에서 멜로디는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넓은 산등성이와 눈앞에 펼쳐진 수없는 길들을 고려하면 그는 그들을 못 보고 지나쳤을 수도 있었다. 자신은 거기 없었던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그곳에 없었다. 그는 음악 속에 있었다. 그의 운명, 그들의 운명, 각자의 길. 그와 상관없는 일이다. 음악이야말로 그의 일이고,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는 누구의 도움도 청하지 않는다.
이 문장은 클라이브의 자기합리화가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는 자신이 그곳에 없었다고 말한다. 음악 속에 있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는 그곳에 있었다. 보고도 보지 않은 사람이다. “그와 상관없는 일”이라는 생각은 예술가의 집중이 아니라 도덕적 회피다. 클라이브의 이 위선적 모습 때문에 그가 버넌보다 더 낫다고 말하기 어려워진다.
130 다른 사람이라면 어깨를 누르는 중압감을 느꼈을 테지만 그는 날아갈 듯한 가벼움을 느꼈다. 그렇다. 빛을,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과 공공의 선이 하나되어 타오르는 불꽃을 느끼고 있었다. 그의 단호한 손길로 국가라는 기관에서 종양을 잘라낼 순간이 임박한 것이다.
버넌은 자신이 공공의 선을 위해 움직인다고 믿는다. 문제는 그 믿음이 너무 달콤하다는 점이다. 그는 정치적 폭로를 하면서 윤리적 중압감보다 쾌감을 느낀다. 권한과 공공의 선이 하나가 되었다고 믿는 순간, 그는 자기 욕망을 정의로 착각한다. 이 문장은 언론 윤리의 문제뿐아니라 공적 활동을 하는 모든 인간들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공익이라는 말은 때로 사적 복수와 야망을 숨기는 가장 좋은 포장지가 된다.
144 로즈 가머니는 소란이 진정되기를 기다렸다가 침착하게 말했다. 저는 한 신문사가 정치적 의도를 품고 이 사진을 포함한 다른 사진들을 내일 공개함으로써 제 남편을 공직에서 몰아낼 작정임을 알고 있습니다. 제가 할 말은 단지 이것뿐입니다. 그 신문은 의도한 바를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미움보다 강하니까요.
로즈 가머니는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을 만든다. 그녀의 말이 순수한 사랑이기보다는 당과 함께 기획한 정치적 전략이다. 이 전략은 결과적으로 버넌의 폭로를 무력화시킨다. 이 장면은 스캔들이 언제나 폭로자에게 유리하게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인간은 수치심만으로 움직이지 않고, 전략적 대응과 동정심, 분노와 반발심으로도 움직인다.
158 메스껍기 그지없는 그의 일상, 냉소적인 체하며 뒤로 계략을 꾸미는 야비한 속내, 언제 뒤통수를 칠지 모르는 수동공격성. 버넌 핼리데이? 버러지 핼리데이! 살아오며 가치 있는 것을 만들어본 일이 없으니 창조한다는 행위에 대해 쥐뿔도 모르지. 창조의 재능을 지닌 사람들은 다 씹어 없애버리고, 별 볼 일 없고 편협한 결벽증을 윤리적 관점으로 여기면서 정작 자신은 말 그대로 오물 위에 천막을 치고 사는 놈. 자신의 보잘것없는 이익을 위해서 몰리와의 추억을 더럽히고, 가머니처럼 약점 많은 바보들이나 파멸시키며 황색신문의 대변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러면서 자기 얘기를 들어주는 시늉이라도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게 누구든, 이게 특히 기가 막히는 부분인데, 자신은 본인의 의무를 다하고 있으며 보다 높은 이상을 위해 봉사한다고 말한다는 점이다. 그는 미쳤다. 환자다. 존재할 가치가 없다!
버넌에 대한 클라이브의 분노는 그가 몰리의 기억을 이용하고, 가머니의 약점을 정치적 무기로 삼으려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클라이브는 그에 대한 비판을 넘어 “존재할 가치가 없는" 대상으로 푹주하고 만다. 자신의 위선을 돌아보지 않고 상대의 위선만을 보고 갖는 분노는 더 쉽게 잔인해 지는 것 같다.
168 침대 옆에는 그의 몰락을 통쾌해하는 짤막하고도 쓰린 엽서가 놓여 있었다. 그의 가장 오래된 친구, 일을 중단하느니 눈앞에서 한 여자가 강간을 당하도록 내버려둔 윤리적으로 고결한 친구가 보내온 것이었다. 증오심에 휩싸여 이성을 잃은 사람의 글이었다. 복수심에 불타는 엽서. 이제는 전쟁이다. 바로 이 순간부터 시작이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버넌도 클라이브의 위선에 분노를 갖는다. 그는 클라이브가 예술을 이유로 한 여성의 위험을 외면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문제는 그 비판 역시 우정의 회복이 아니라 전쟁의 선언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두 사람은 서로의 위선을 알고 있고, 분노 이전에 자신에 대한 성찰이 필요했지만 상대에 대한 공격을 우선한다.
181 클라이브는 때로 눈앞의 작업에 매달려 있느라 궁극적인 목적을 망각하기도 했다. 음악을 통해 감각적이면서 추상적인 기쁨을 창조한다는 목적, 감각과 지성이 어우러지는 경계를 떠도는 무엇, 인간 언어의 범주를 초월한 곳에 존재하는 의미를 소리로 변환시킨다는 목적이었다.
이 문장은 예술에 대한 매큐언의 이해가 꽤 깊다는 걸 보여준다. 음악은 언어 바깥의 의미를 소리로 바꾸는 일이다. 감각과 지성이 만나는 경계에 있는 것. 하지만 그렇게 숭고한 목적이 있다면, 현실의 사람을 외면해도 되는걸까? 클라이브는 이 아름다운 음악의 목적과 정의를 알고 예술의 가치를 깎아내리지 않지만, 그것을 핑계로 비윤리적인 책임을 덮으려는 위선을 안고 있다.
200 두 건의 자살이 아니었답니다. 서로 독살했다는군요. 정체 모를 마약을 타 먹였다네요. 서로를 살인한 거라고.
그럴 수가!
여긴 안락사 허용법을 악용하는 양심 없는 의사들이 있다는군요. 대부분 가족 중 늙은 사람을 죽여주고 돈을 받는답디다.
마지막 반전은 짧지만 강하다. 처음의 안락사 약속은 품위 있는 죽음과 우정의 언어로 시작했지만, 끝에서는 서로를 죽이는 살인으로 변한다. 더 씁쓸한 것은 그 죽음조차 제도와 직업 윤리의 틈새에서 처리된다는 점이다. 암스테르담(Amsterdam)은 자유와 선택의 장소처럼 보였지만, 소설의 마지막에서는 자기합리화와 악용의 장소가 된다. 이 결말은 너무 냉소적이어서 웃기고, 동시에 몹시 슬프다.
4. 감상평
암스테르담은 짧은 소설이지만, 읽고 나면 꽤 오래 불편함이 남는다. 이야기 자체는 단순하다. 한 여자의 죽음, 두 남자의 오래된 우정, 정치 스캔들, 예술가의 윤리적 실패, 언론인의 자기기만, 그리고 서로의 파멸. 그런데 이 단순한 줄거리 안에 매큐언은 여러 겹의 위선을 보여준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클라이브와 버넌이 서로의 문제는 너무 잘 본다는 것이다. 클라이브는 버넌의 폭로가 공익이 아니라 야망과 복수심에 가깝다는 걸 알고, 버넌은 클라이브가 예술을 핑계로 실제 위험을 외면했다는 걸 안다. 둘 다 틀리지 않았다. 문제는 둘 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똑같은 잦대를 적용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암스테르담의 비극은 선과 악의 대립이 아니라, 타인의 악에는 예민하고 자기 악에는 둔한 사람들의 충돌이다.
이 소설에서 예술은 아름답지만 위험하다. 클라이브가 음악을 생각하는 방식은 진지하고 매혹적이다. 그는 음악을 인간 본성의 언어로 생각한다. 하지만 산에서 한 여성이 위험에 처했을 때, 그는 그 아름다움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한 여인이 처한 위험을 외면한다. 여기서 예술가의 책임을 묻는다. 좋은 작품을 만드는 일이 인간에 대한 책임을 면제해주지는 않는다. 이 점은 78쪽의 인용문이 그 정신을 알려준다. 클라이브는 예술가의 오만을 비웃지만, 자신도 결국 같은 방식으로 행동한다.
언론에 대한 풍자도 날카롭다. 버넌은 자신이 공공의 선을 위해 가머니 사진을 공개하려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의 판단에는 신문사의 판매부수, 자신의 권력 회복, 정치적 계산이 섞여 있다. 특히 인상깊은 점은 프랭크 디븐과 그랜트 맥도널드 같은 저지(Judge)의 주변 인물들도 이 흐름에서 자기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모습을 함께 그렸다는 것이다. 이들은 주인공만큼 깊게 그려지지는 않지만, 조직 안에서 위선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준다. 큰 악은 한 사람의 결심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주변의 동조, 침묵, 계산, 직업적 욕심이 함께 움직인다.
잠깐 등장하는 음악계의 주변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오케스트라 지휘자 줄리오 보의 일탈과 위선적 발언, 음악 평론가 폴 레너크의 불법적 행동 등, 그들 역시 순수한 예술 세계의 인물이라기보다 명성, 권위, 평가, 자존심의 세계에 속에서 위선적임을 드러내고 있다. 매큐언은 정치, 언론, 예술 중 어느 세계도 특별히 깨끗하게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세련된 직업일수록 위선은 더 교묘해진다. 예술은 고상한 말로, 언론은 공익이라는 말로, 정치는 국가라는 말로, 우정은 책임이라는 말로 자신을 포장한다.
이 소설의 또 다른 축은 죽음과 품위의 문제다. 몰리의 죽음은 독자에게도 불편한 질문을 남긴다. 인간다운 삶이 무너졌을 때, 죽음을 선택할 권리는 어디까지 인정될 수 있을까. 친구가 그 선택을 도울 수 있을까. 이 질문 자체는 무겁고 진지하다. 하지만 소설은 그 질문을 순수하게만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고상한 윤리적 약속이 감정의 타락 속에서 어떻게 살인의 도구가 되는지를 보여준다. 이 점에서 암스테르담은 안락사 논쟁에 대한 단순한 찬반 소설이 아니다. 인간이 자기 자신을 얼마나 쉽게 속이는지에 대한 소설이다.
클라이브와 버넌은 전체 내용을 이끌고 있는 핵심적인 인물이지만, 연민을 오래 허락받지 못한다. 몰리 역시 이야기의 중심에 있지만, 실제로는 남성 인물들의 욕망과 회한을 비추는 죽은 존재이다. 로즈 가머니(Rose Garmony)는 소아 전문의로서 정치인의 아내로서 강렬한 장면을 만들지만, 그녀의 내면도 충분히 좋은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지 못한다. 조지 레인은 마지막 장면에서도 버넌의 아내 맨디에게 접근하려는 모습을 보여주고, 줄리언 가머니도 위선적이며 타락한 윤리적 의식을 갖고 있다. 그래서 소설은 모든 인물들이 악과 정의를 함께 가진 인물들이라 무척 현실적이며 이런 세태를 반영한 풍자이면서 동시에 의도적으로 건조하게 묘사한 코미디극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암스테르담은 매력적이다. 이 소설은 남을 비판할 때의 쾌감과 자신을 돌아볼 때의 불편함을 동시에 준다. 읽는 동안 버넌을 비웃고, 클라이브를 비난하고, 가머니를 의심하고, 주변 인물들의 속물성을 본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는 이들과 정말 다를까? 내가 공익, 예술, 우정, 사랑, 책임이라고 부르는 것들 속에는 얼마나 많은 내 이익을 섞어 놓았을까?라는 질문을 던질 수 밖에 없었다.
5. 깊이 생각해볼 질문
1. 클라이브와 버넌의 우정은 언제부터 무너졌다고 볼 수 있을까?
좋은 친구에서 적이 된 계기는 이 소설의 중요한 전환점이다. 몰리의 장례식에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 죽음을 부탁할 만큼 가까운 사이였다. 그 약속 안에는 이미 불안, 자기연민, 죽음에 대한 공포가 들어 있었지만 상대에 대한 신뢰를 통해 해결하려고 했다. 이후 가머니 사진 문제와 산에서의 사건을 거치며 두 사람은 서로의 위선을 발견하고 상대를 증오하게 된다. 이 질문을 통해 우정이 무너지는 원인이 하나의 사건인지, 오래 쌓인 경쟁심과 자존심인지, 아니면 각자가 자기 자신을 정당화하는 방식 때문인지 생각해볼 수 있다.
2. 클라이브가 산에서 한 여성을 외면한 장면은 예술가의 집중과 도덕적 책임을 어떻게 함께 생각하게 만드는가?
클라이브는 음악 속에 있었다고 말한다. 그는 그 순간의 멜로디가 자신의 중요한 창작과 연결되어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독자는 그가 실제 위험을 외면했다는 사실을 안다. 이 질문은 예술 창작의 몰입이 어디까지 이해될 수 있는지, 그리고 아무리 중요한 창작이라도 타인의 고통 앞에서 어떤 한계를 가져야 하는지 생각하게 만든다. 소설과 연결해보면, 매큐언은 예술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예술을 핑계로 삼는 인간의 약점을 비판한다.
3. 버넌의 가머니 사진 보도 계획은 공익과 사적 욕망이 어떻게 뒤섞일 수 있는가?
버넌은 정치인의 위선을 폭로하려 한다. 겉으로 보면 언론의 감시 역할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의 마음에는 신문 판매, 권력감, 경쟁심, 몰리에 대한 감정, 조지와의 관계, 가머니에 대한 반감이 뒤섞여 있다. 이 질문은 언론 보도에서 공익이라는 명분이 언제 정당한 감시가 되고, 언제 사적 목적의 포장이 되는지 생각하게 한다. 또 프랭크 디븐과 그랜트 맥도널드 같은 주변 인물들이 조직 안에서 이런 결정을 어떻게 부추기는지도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다.
4. 로즈 가머니의 기자회견 장면은 사랑, 정치, 이미지 관리의 관계를 어떻게 드러내는가?
로즈는 “사랑은 미움보다 강하다”고 말하며 남편을 방어한다. 이 장면은 감동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매우 전략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 질문은 로즈의 발언을 단순한 사랑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를 생각하게 한다. 그녀의 말은 실제 사랑의 표현일 수도 있고, 정치적 위기를 돌파하는 강력한 이미지 전략일 수도 있다. 소설 속에서 이 장면은 버넌의 계획을 무너뜨린다. 결국 대중은 폭로된 사실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실을 둘러싼 말과 태도, 감정의 연출까지 함께 본다.
5. 이 소설에서 죽음을 도와달라는 약속은 왜 우정의 증거가 아니라 파국의 장치가 되었을까?
클라이브와 버넌의 약속은 처음에는 품위 있는 죽음에 대한 진지한 고민처럼 보인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서로를 죽이는 방식으로 변질된다. 이 질문은 안락사라는 제도적 문제보다 더 깊은 곳을 보게 한다. 인간이 타인의 생명을 다루는 약속을 할 때, 감정과 관계와 권력은 얼마나 위험하게 끼어드는가. 소설은 죽음의 선택권 자체보다, 그 선택권을 다루는 인간의 불완전함을 더 날카롭게 보여준다.
6. 암스테르담에 등장하는 주변 인물들의 위선은 주인공들의 몰락을 어떻게 더 넓은 사회 풍자로 확장하는가?
프랭크 디븐, 그랜트 맥도널드, 줄리오 보, 폴 레너크는 중심 인물은 아니지만, 이 소설의 세계를 더 냉소적으로 만든다. 이들은 언론, 예술, 비평, 조직의 자리에서 각자 자기 이익과 권위를 따라 움직인다. 이 질문은 클라이브와 버넌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을 둘러싼 사회 전체가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살펴보게 한다. 매큐언은 개인의 타락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세련된 직업 세계의 속물성과 자기기만을 함께 풍자한다.
7. 몰리는 소설 속에서 죽은 인물이지만, 왜 모든 사건의 중심에 남아 있는가?
몰리는 이미 죽었지만, 클라이브와 버넌, 가머니, 조지의 기억과 욕망 속에서 계속 살아 있다. 그녀는 각 인물이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거울 같은 존재다. 이 질문은 몰리가 실제 인물로 얼마나 그려지는지, 혹은 남성 인물들의 회상과 욕망 속에서 소비되는 인물인지 생각하게 한다. 이를 통해 소설이 몰리를 중심에 두면서도 그녀의 목소리를 충분히 주지 않는 방식에 대해 비판적으로 볼 수 있다.
8. 이 소설이 말하는 가장 큰 위선은 무엇이며, 그 위선은 오늘날의 우리 삶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
암스테르담의 인물들은 모두 그럴듯한 말을 한다. 공익, 예술, 사랑, 우정, 품위, 책임. 하지만 그 말들 아래에는 더 커다란 자존심, 욕망, 두려움, 복수심이 숨어 있다. 이 질문은 소설 속 인물들을 비난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도덕적 언어를 돌아보게 한다. 내가 정의라고 부르는 것은 정말 정의인지, 내가 책임이라고 부르는 것은 정말 책임인지, 내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은 상대를 위한 것인지 나를 위한 것인지 생각해보게 만드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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