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행 야간열차” 파스칼 메르시어

2026.08.02

파스칼 메르시어 · 리스본행 야간열차

주요 인물

라이문트 그레고리우스가 현재의 리스본에서 만난 사람들의 기억을 통해 아마데우 드 프라두의 과거를 찾아간다.

그레고리우스의 현재 기억과 증언 프라두의 과거
01

그레고리우스의 현재

베른에서 떠나 리스본으로 향한 이후의 관계

현재의 중심
G

라이문트 그레고리우스

고전어 교사 · 프라두의 삶을 추적하는 여행자

베른에서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가르치며 규칙적인 삶을 살아왔다. 우연히 프라두의 책을 발견한 뒤 리스본으로 떠나고, 여러 사람의 증언을 모으며 프라두의 삶과 자신의 삶을 함께 되돌아본다.

과거의 가족

플로렌스

그레고리우스의 전 아내

그레고리우스와 5년간 결혼생활을 한 예전 제자다. 그의 고독하고 폐쇄적인 생활을 이해하게 하는 인물이다.

베른의 일상

캐기

학교 교장

그레고리우스가 오랫동안 머물렀던 학교와 안정된 일상을 상징한다.

지적 관계

독시아데스

베른의 안과 의사

그레고리우스의 학문적 삶과 지적 관심, 감성을 드러내는 인물이다.

리스본의 친구

조제 안토니우 다 실우베이라

야간열차에서 만난 사업가

리스본행 열차에서 그레고리우스의 이야기에 감동을 느낀다. 낯선 도시에서 그가 머물 수 있도록 돕고 에사를 연결해준다.

언어의 안내자

세실리아

포르투갈어 교사

그레고리우스가 프라두의 글을 번역에만 의존하지 않고 직접 읽도록 돕는다. 언어를 통해 프라두의 내면으로 들어가게 하는 인물이다.

첫 번째 연결자

마리아나 에사

안과 의사 · 주앙 에사의 조카

그레고리우스의 안경을 새로 맞춰주고 자신의 삼촌 주앙 에사를 소개한다. 현재의 여행을 프라두의 저항운동 시절과 연결한다.

02

기억과 증언의 연결지대

책과 증언을 통해 현재와 과거를 연결하는 관계

두 시대를 잇는 매개

언어의 연금술사

프라두가 남긴 글과 기록

그레고리우스가 프라두에게 관심을 갖게 만드는 출발점이다. 죽은 프라두의 목소리가 현재의 그레고리우스에게 도달하는 통로다.

가족의 기억

아드리아나 드 프라두

프라두의 여동생

오빠의 글을 보관하고 정리한 인물이다. 그레고리우스에게 프라두의 가족사와 개인적인 모습을 전하며 죽은 오빠의 기억을 지키려 한다.

어린 시절의 기억

마리아 주앙 아빌라

프라두의 오랜 친구

프라두의 어린 시절과 감춰진 내면을 기억한다. 다른 인물들이 전하는 정치적 사건과 달리 프라두의 정서와 성격을 보여준다.

정신적 영향

바르톨로메우 신부

프라두의 교사이자 정신적 스승

프라두의 지적 성장에 영향을 주었다. 종교와 도덕, 신념을 둘러싼 프라두의 질문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우정과 갈등

조르지 오켈리

프라두의 친구 · 약사 · 저항운동 동료

프라두를 저항운동으로 이끈 가까운 친구다. 에스테파니아를 둘러싼 사랑과 질투 때문에 두 사람의 우정은 깊은 균열을 겪는다.

사랑과 선택

에스테파니아 에스피노자

프라두의 연인 · 저항운동 참가자

에스테파니아는 왕관·영예·승리, 에스피노자는 가시·고통·위험을 의미. 뛰어난 기억력을 지닌 저항운동 참가자다. 조르지와 연인이었지만 프라두와 사랑에 빠지며 세 사람의 관계와 조직 내부에 갈등을 만든다.

저항운동의 증언

주앙 에사

저항운동 동료

살라자르 독재에 저항했던 인물이다. 그레고리우스에게 프라두의 정치적 선택과 당시 저항운동이 처한 위험을 구체적으로 들려준다.

03

프라두의 과거

가족, 사랑, 독재와 저항운동으로 이어지는 관계

과거의 중심
P

아마데우 드 프라두

의사 · 사상가 · 저항운동 참가자

사람의 생명을 구해야 한다는 의사의 윤리와 독재에 저항해야 한다는 정치적 책임 사이에서 갈등한다. 그가 남긴 글은 그레고리우스가 자신의 삶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가족과 권위

알렉산드리 프라두

프라두의 아버지, 판사

권위적인 아버지이자 살라자르 체제의 질서와 연결된 인물이다. 프라두가 권력과 도덕, 복종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배경이 된다.

가족

멜로디

프라두의 여동생

프라두 가족의 구성원이다. 아드리아나와 함께 프라두가 성장한 가정환경과 가족 안에서의 역할을 보여준다.

결혼과 죄책감

파치마

프라두의 아내

아마데우 드 프라두와 결혼한 인물이다. 프라두는 결혼 훨씬 전에 아이를 갖지 않기 위해 수술을 받았지만 그 사실을 파치마에게 말하지 못했고, 이 침묵을 자신의 비겁함으로 여기며 오랫동안 죄책감을 느낀다. 두 사람의 결혼은 프라두의 사랑과 책임,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두려움을 함께 보여준다.

독재 권력

후이 루이스 멩지스

비밀경찰 책임자

‘리스본의 도살자’로 불리는 독재 권력의 인물이다. 의사인 프라두가 그의 생명을 구하면서 프라두는 시민들에게 배신자로 오해받는다.

파스칼 메르시어 · 리스본행 야간열차

그레고리우스의 열차 여정

베른의 익숙한 삶을 떠나 로잔과 제네바, 프랑스 남서부와 스페인을 지나 리스본으로 향하는 여정이다. 지도에는 각 역을 직선으로 연결하지 않고 구글 지도가 제공하는 철도 경로를 표시한다.

베른 로잔 제네바 파리 보르도 비아리츠 엔다예 비야돌리드 살라망카 리스본
철도 경로 주요 역 철도 경로 준비 중
각 구간의 철도 경로를 계산하는 중

파스칼 메르시어 · 리스본행 야간열차

그레고리우스의 리스본 여정

리스본에 도착한 그레고리우스가 프라두의 흔적과 기억을 따라 방문한 장소를 소설의 흐름에 맞춰 시간순으로 표시했다. 후반부의 베른 귀환과 다시 리스본으로 돌아온 과정도 함께 담았다.

실제 확인 가능한 장소 대표 위치 시간순 이동
리스본의 장소를 불러오는 중

1) 전체적인 소감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파스칼 메르시어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고전어 교사 라이문트 그레고리우스가 어느 날 아침 '포르투게스' 말을 하는 의문의 여인을 만나면서 시작된다. 그 후 그는 아무 예고 없이 교실을 떠나 서점에서 우연히 찾은 포르투갈 작가의 책 서문을 읽고 리스본행 열차에 올라타게 된다. 그리고 포르투갈 의사 아마데우 드 프라두가 남긴 글을 따라 그의 가족, 친구, 연인, 저항운동 동료들을 찾아간다. 이 과정에서 살라자르 독재 아래에서 살아간 한 지식인의 삶이 조금씩 복원된다.

예상과 다른 사건들
이 소설은 사건이 빠르게 진행되는 일반적인 전개방식의 소설이 아니다. 처음 시작은 상당히 흥미로웠다. 단조롭게 규칙적이며 무미건조한 생활을 하고 있는 그레고리우스 앞에 갑자기 나타난 의문의 여인, 이마에 적어놓은 전화번호 외에는 아무런 정보도 없이 갑자기 사라진 상황. 그 여인은 누구며, 그 전화번호는 누구의 것인지.... 독자를 커다란 궁금증으로 묶어놓고 시작한다. 또한 그레고리우스도 57년동안 한번도 할 수 없었던 하지 않았던 ‘자리에서 일어나 그냥 떠나는 것.(304)을 실행한다. 왜 그랬을까?
그렇지만 결국 소설은 시작부분에서 잔뜩 궁금하게 만든 질문들에 대한 답을 끝까지 주지 않은채, 낯선 도시에 가서 누군가를 만나고, 이야기를 듣고, 프라두의 글을 읽고, 다시 생각하는 일이 반복된다. 그래서 철학적 사유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오래 남는 책이지만 이야기의 속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꽤 느리고 장황하게 느껴질 수 있다.
나는 이 흐름이 꽤 흥미롭다고 생각한다.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결국 삶의 바깥에서 다른 삶을 구경하며 따라가지만, 인과 관계없이 돌발적으로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들 중에서, 변화를 일으키는 아주 작은 흔들림을 무시하지 않는 이야기​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결국 그레고리우스는 이런 흐름에서 ’마음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느꼈다.‘ (384)

한 번뿐인 삶에서 ‘살아보지 않은 나’를 생각하다
그레고리우스의 삶에는 큰 사건이 없다. 대조적으로 철학적 사유와 함께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프라두에 대한 관심은 그의 생각을 흔들었다.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것들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만을 경험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걸까?> 그는 프라두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왜 이렇게 살아왔을까?”​를 묻는 것 같다.
우리는 실제로 살아낸 삶 하나만 가지고 있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살아보지 않은 삶(경험)이 들어있다.
다른 직업을 선택했다면, 다른 사람을 사랑했다면, 그때 떠났다면, 그때 머물렀다면.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그 가능성을 후회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이제라도 아직 살아 있다면 완전히 다른 인생은 아니더라도 삶의 방향을 조금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레고리우스가 붉고 가느다란 안경테를 선택하는 작은 변화가 그래서 꽤 좋았다. 베른에서의 그는 무겁고 오래된 안경을 쓰고 있었다. 리스본에서 안경이 깨지고 새로운 안경을 맞추면서 외모도 달라진다. 아주 작은 변화지만 그가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프라두는 영웅이라기보다는 모순 덩어리 인간
이 작품에서 프라두는 독재에 저항하는 완벽한 활동가는 아니다. 그는 때로 용감하고 때로 비겁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하지만 가까운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파치마와 결혼하기 전에 아이를 갖지 않기 위한 수술을 받고도 그 사실을 말하지 못한 비겁함의 죄책감에 시달린다. 가장 친한 친구의 연인 에스테파니아와 사랑에 빠진다. 그런 모순 때문에 프라두는 오히려 인간적이다.
독재에 맞선다는 정치적 올바름만으로 한 사람의 삶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 이 소설의 특징이다. 독재 속에서도 사람들은 사랑하고 질투하고 친구를 배신하고 후회한다.
역사는 거대한 사건으로 기록되지만 실제 인간은 그런 작은 감정들 속에서 살아간다.

도덕적으로 깨끗하게 사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프라두와 아버지의 이야기는 지식인의 책임이라는 주제로 이어진다. 잘못된 현실을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할까. 아버지는 법을 알고 있었고 프라두는 윤리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독재라는 상황에서는 알고 있는 것과 행동하는 것 사이에 거대한 거리가 생긴다.
프라두가 결국 저항운동에 참여하는 것은 단순히 정치적 신념이라기 보다는, 멩지스를 살린 뒤 자신에게 쏟아지는 비난과, 자신이 의사로서 옳은 일을 했는데도 사회적으로는 부정의한 결과가 생긴 경험이 그를 움직인다. 자기 직업의 윤리를 지키는 것과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충돌할 때 사람은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아마데우는 독재정권의 수하에서 판사로 일하는 아버지와 갈등한다. 사람들을 판결하여 독재정권의 끔찍한 감옥인 ‘타라파우(Tarrafal)’로 보내는 아버지를 공격한다. 타라파우 같은 장소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체제를 유지하는 역할을 계속한다면, 그 침묵과 순응에도 도덕적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아마데우 역시 똑같은 모순에 빠집니다. 의사인 그는 살라자르의 비밀경찰인 멩지스가 죽어갈 때 의사로서 그를 살린다. 그 결과 주변 사람들에게 배신자로 취급받는다. 아마데우의 의술과 원칙이 결국 살라자르 독재와 충돌하게 된다.
결국 아버지에게는 “정의롭지 않은 체제에 협력해서는 안 된다”고 요구하지만 자신은 의사로서, “눈앞의 사람이 악인이라도 환자라면 살려야 한다”라는 원칙을 고수한다.

2) 주요 문장

10. 라이문트 그레고리우스의 삶을 바꾸어놓은 그날은 여느 날과 다름없이 똑같이 시작됐다.
27. 우리는 많은 경험 가운데 기껏해야 하나만 이야기한다. 그것조차도 우연히 이야기할 뿐, 그 경험이 지닌 세심함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 침묵하고 있는 경험 가운데,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삶에 형태와 색채와 멜로디를 주는 경험들은 숨어 있어 눈에 띄지 않는다.
28.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것들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만을 경험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걸까?
44. 자기 영혼의 떨림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
93. 독재가 하나의 현실이라면, 혁명은 하나의 의무이다.
116. 우리 인생의 진정한 감독을 우연이다. 잔인함과 자비심과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으로 가득한 감독.
447~449.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의 경고). 어두운 수도원의 담, 내리깔은 시선, 눈으로 덮인 묘지. 꼭 이래야 하는가?
원래 하고 싶었던 일에 의식을 집중하기. 흘러가는 유한한 시간에 대한 자각을 자신의 습관과 기대, 특히 다른 사람들의 기대와 위협에 대항할 힘의 원천으로 삼기. 다시 말해 유한 시간에 대한 자각을, 미래를 담지 않고 열 수 있는 그 무엇으로 삼기. 이렇게 본다면 메멘토(경고)는 권력을 가진 억압자들에게는 위험하다. 이들은 억압당하는 자들의 소원을 아무도 듣지 못하게, 그들 스스로도 듣지 못하게 하려는 계획을 꾸미니까.
"내가 왜 그 생각을 해야 하지? 종말은 종말이야. 올 때가 되면 오는 거지. 왜 나에게 그 말을 하는 거지? 달라질 거라고는 전혀 없는데."
여기에 대하 대답은 뭘까?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뮌가 가치 있는 일을 하라고."
하지만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게 무엇인가? 오랫동안 생각해 온 소원을 실현하기 위해 움직이기. 나중에도 언제나 시간이 있다고 생각하는 잘못을 고치기. 메멘토를 안락함과 자기기만과 꼭 필요한 변화에 대한 불안에 대항할 도구로 사용하기. 오래 꿈꾸어오던 여행하기. 이런 언어들을 배우고, 저런 책들을 읽기. 이 보석을 사고, 저 유명한 호텔에서 하룻밤 묵기. 스스로에게 잘못을 저지르지 않기.
여기에는 더 큰 일들도 속한다. 좋아하지 않던 직업을 그만 두고, 싫어하던 환경을 떠나기. 더 진실해지고 자기 자신에게 가까워지는 일들을 하기.
아침부터 저녁까지 해변에 누워 있거나 카페에 앉아 있기. 이것도 메멘토에 대한 대답이다. 지금까지 일만 해온 사람이 할 수 있는 대답.
"네가 언젠가 죽으리라는 걸 기억해. 어쩌면 내일일지도 몰라."
"내내 그 생각을 해서 직장을 빼먹고 햇볕을 쬐고 있는 거야."
외관상 음울해 보이는 경고가 눈 덮인 수도원의 뜰에 우리를 가두어두지는 않는다. 경고는 바깥으로 향하는 길을 열고, 우리에게 현재를 일깨워 준다.
죽음을 생각하며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바로 세우기.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자신이 행한 잘못을 사과하며, 속 좁은 마음 때문에 하지 못했던, 다른 사람을 인정한다는 말을 소리 내어 발음하기. 다른 사람들의 빈정댐, 잘난 척, 그것 말고도 이들이 누군가에 대해 지닌 변덕스러운 판단 등 지나치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을 더 이상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기. 메멘토를 다르게 느끼라는 권유로 받아들이기.
이때 주의할 점. 이럴 경우 특정한 가까움을 전제로 하는 '순간의 진지함'이 없으므로 인간관계는 더 이상 진실하지 않고 생기에 넘치지도 않는다. 또한 경험의 많은 부분에서 결정적인 것은 유한이라는 생각과 연결되어 있지 않은, 앞날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는 느낌인데, 곧 다가올 죽음에 대한 지각이 우리에게 스며들면 이런 경험의 싹은 말라죽는다.
537. 우리 인생은 바람이 만들었다가 다음 바람이 쓸어갈 덧없는 모래알, 완전히 만들어지기 전에 사라지는 헛된 형상.

3) 생각 나누기

Q 자기 삶이 흔들리는 순간을 경험한 적이 있는가? 어떻게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을까?
그레고리우스에게는 안정된 직업과 익숙한 생활이 있었다. 객관적으로 보면 당장 떠나야 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포르투갈 여인과의 만남, 낯선 언어, 프라두의 책이 그의 내면에서 설명하기 힘든 흔들림을 만든다.
이 질문에서는 삶을 바꾸게 하는 계기가 반드시 큰 불행이나 위기여야 하는지 생각해볼 수 있다. 오히려 아주 작은 불편함이나 호기심, 반복해서 마음에 남는 감정이 삶의 방향을 바꾸라는 신호일 수도 있다. 우리는 그런 신호를 언제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언제 지나가는 충동으로 보아야 하는지도 함께 생각해본다.

Q 독재와 같은 부당한 체제 안에서 직업윤리와 사회적 정의는 어떻게 함께 지킬 수 있을까?
프라두는 의사이기 때문에 멩지스를 치료한다. 아버지는 판사이기 때문에 법이라는 제도 안에서 행동해야 한다. 그러나 두 사람이 지키는 직업윤리는 독재 체제 안에서 오히려 정의와 충돌한다.
개인이 맡은 직업의 의무가 사회적 책임과 충돌할 때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는가. 의사, 판사뿐 아니라 교사, 공무원, 언론인, 연구자처럼 제도 안에서 일하는 지식인의 책임까지 연결해 생각해본다.

Q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무엇을 아는 것일까?
그레고리우스는 수많은 사람에게서 프라두의 이야기를 듣지만 누구의 기억도 완전하지 않다. 프라도 조차도 ‘모든 사람이 똑같은 그를 보았지만, 사람들이 보는 외부세계의 한 부분은 내면세계의 한 부분이기도 하므로 모두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았을 것’이라고 했으며,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는 모습 그대로였던 때는 자기 인생에서 단 일 분도 없다고 확신해다. (108)
그레고리우스는 평생 라틴어를 해석하고, 그리스어를 해석하고, 히브리어를 해석해 온 사람이다.
그런데 리스본에 와서는 한 인간을 해석한다. 아마데우라는 인간을 번역한다. 하지만 아마데우에 관한 증언들은 전부 다르다. 아드리아나는 생명의 은인이며 오빠인 한 사람을 기억하고, 조르지는 친구이자 동지인 다른 아마데우를 기억하고, 주앙 에사는 또 다른 아마데우를 기억하고, 마리아 주앙은 또 다른 아마데우를 기억한다. 이 소설 구조자체가 그레고리우스에 의해 아마데우의 책과 그를 알았던 사람들의 증언을 따라가며 한 인간의 삶을 재구성하는 구조이다. 그런데 ‘진짜 아마데우’는 누구일까?
모든 사람의 기억 속에 조금씩 다른 아마데우가 있을 뿐이다.
한 사람을 이해할 때 행동, 말, 기록, 타인의 기억 가운데 무엇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해본다. 동시에 우리가 가까운 사람을 정말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지, 우리 자신조차 하나의 일관된 이야기로 설명할 수 있는지도 함께 생각하게 된다.

Q 보내지 않은 편지는 관계에 무엇을 남기는가?
프라두가 아버지에게 쓴 편지는 결국 전달되지 않는다. 말하지 않은 생각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관계 안에 오래 남아 다른 형태의 침묵이나 후회가 되기도 한다.
겉으로 보면 아버지와 아마데우는 정반대입니다. 아버지 알렉상드르 프라두는 판사, 즉 법·질서·권위를 대표하는 사람이고, 아마데우는 권위와 종교와 독재를 끊임없이 의심하는 사람이다. 아마데우는 아버지가 살라자르 체제에서 판사로 살아가는 것을 견디기 어렵게 여긴다. 반대로 아버지는 뛰어난 지성과 날카로운 도덕적 판단력을 가진 아들을 자랑스러워하면서도 두려워한다. 아버지가 죽기 하루 전에 남긴 편지의 마지막 말은 ‘내가 죽으면 넌 날 용서하겠니?’ (389)로 자신이 아들의 평가 앞에서 얼마나 무력감을 느꼈는지가 드러낸다.
그런데 그레고리우스가 두 편지를 읽고 둘은 마치 서로 적대하는 사람처럼 살아왔지만, 사실은 서로에게 말하지 못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프라두와 아버지의 관계를 통해 말하지 못한 진실이 개인의 관계와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또 어떤 시대적·사회적 상황이 사람들이 솔직하게 말하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지 생각해볼 수 있다.

Q 내 삶이라고 부르는 이 삶은 정말 내가 선택한 것인가?
아마데우에게 아버지는 단순한 아버지가 아니라 ‘재판관’이다. 이 관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어는 “판결(judgment)”이다. 아버지는 직업적으로도 판사이다. 그래서 아마데우에게 아버지의 시선은 단순한 부모의 시선이 아니고, 자신의 행동과 존재 전체를 평가하는 법정의 시선처럼 내면화되며 어머니는 소리없는 독재로 아마데우를 억압했다.
아마데우는 아버지에게서 받은 메시지를 사실상 “다른 사람들이 너의 재판관이다.” 즉, 다른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로 살아가는 삶이였다. 아마데우가 부모의 시선을 내면화하면서 타인의 평가를 일종의 법정처럼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이것은 아마데우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된다. 우리는 부모에게 인정받기 위해 공부하고, 사회가 기대하는 직업을 선택하고, 다른 사람이 기대하는 사람이 되고, 어느 순간 그것을 ‘내가 선택한 삶’이라고 착각할 수 있다.
“내 삶이라고 부르는 이 삶은 정말 내가 선택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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