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찬란한 태양마음의 문을 열어온 몸으로 빛을 느끼게 하소서 우울한 마음어두운 마음모두 지워버리고밝고 가벼운 마음으로9월의 길을 나서게 하소서 꽃 길을 거닐고높고 푸르른 하늘을 바라다보며자유롭게 비상하는꿈이 있게 하소서 꿈을 말하고꿈을 쓰고꿈을 노래하고꿈을 춤추게 하소서 이 가을에떠나지 말게 하시고이 가을에사랑이 더 깊어지게 하소서 – 이해인…
시 모음
박시교 “독작”
상처 없는 영혼이 세상 어디 있으랴 사람이 그리운 날 아, 미치게 그리운 날 네 생각 더 짙어지라고 혼자서 술 마신다. – 박시교 “독작(獨酌) 이 시는 요즘 말로 ‘혼술’하는 마음을 담았다. 조금 마음이 먼저 무겁게 내려앉는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마음의 상처를 피할 수 없다는 사실, 그리고 그 상처가 때로는…
이성복 “그 여름의 끝”
그 여름 나무 백일홍은 무사하였습니다한차례 폭풍에도 그 다음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아쏟아지는 우박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습니다 그 여름 나는 폭풍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그 여름 나의 절망은 장난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지만여러 차례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넘어지면 매달리고 타올라 불을 뿜는 나무 백일홍 억센 꽃들이두어 평 좁은 마당을 피로 덮을…
용혜원 “깊고 깊은 밤에”
모든 소리마저 잠들어버린깊고 깊은 밤에생각이 꼬리를 물고 늘어져잠들지 못한다 멀리 떨어져 있는그대 얼굴은 자꾸만내 가슴속을 파고든다 그대 생각 하나하나를촛불처럼 밝혀두고 싶다 그대가 멀리 있는 밤은더 깊고 어둡다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밤마다 나를 찾아오는이유는 무엇이냐 지금도 사방에서그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 용혜원 “깊고 깊은…
박준 “앞으로 나란히”
허름한 겨울을 기록하는 대신작은 틈을 내며 살았지 우리는 후회에도 순서가 있어서한번 두번 세번 다시 한번 두번 세번 오늘 길어진 네 그림자가어제 내가 그리워한 것에 닿아 다시 나란해지는 서로의 앞 – “앞으로 나란히” 박준 이 시는 마치 겨울 끝자락에 서 있는 기분이 든다. 바람은 차갑고 풍경은 허름하지만, 그 속에서도…
박세현 “너무 괜찮다”
너무 괜찮다자고 일어나면 다 괜찮다어젯밤 불던 바람소리도바람을 긋고 간 빗소리도 괜찮다보통 이상인 감정도보통에 미달한 기분도 괜찮다자고 일어나면 정말 괜찮다웃어도 괜찮고 울어도 괜찮다웃지 않아도 괜찮고 울지 않아도 괜찮다유리창에 몸을 밀어 넣은 빗방울이벗은 소리만으로 내게 오던 그 시간반쯤 비운 컵라면을 밀어놓고빗소리와 울컥 눈인사를 나누어도괜찮다너무…
고영민 “여름의 일”
나무 아래 앉아 울음을 퍼 담았지 시퍼렇게 질린 매미의 울음을몸에 담고 또 담았지 이렇게 모아두어야한결 요긴하게 울음을 꺼내 쓰지 어제는 안부가 닿지 않은 그대 생각에한밤중 일어나 앉아 숨죽여 울었지 앞으로 울 일이 어디 하나, 둘일까꾹꾹 울음을 눌러 담았지 아껴 울어야지 울어야 할 때는일껏 섧게 오래 울어야지 이 시는 울음을 바가지로 물을 길어 올려…
조병화 “무더운 여름밤”
무더운 여름밤 밤에 익은 애인들이 물가에 모여서 길수록 외로워지는 긴 이야기들을 하다간…… 밤이 깊어 장미들이 잠들어버린 비탈진 길을 돌아들 간다. 마침내 먼 하늘에 눈부신 작은 별들은 잊어버린 사람들의 눈 무수한 눈알들처럼 마음에 쏟아지고 나의 애인들은 사랑보다 눈물을 준다. 내일이 오면 그날이 오면 우리 서로 이야기 못한 그 많은 말들을 남긴 채 영…
정연복 “인생”
어차피 살아야 할 인생이라면눈물 같은 소주를 마시며잠시 슬픔과 벗할지언정긴 한숨은 토하지 않기로 하자 아롱아롱 꽃잎 지고서도참 의연한 모습의저 나무들의 잎새들처럼푸른빛 마음으로 살기로 하자 세월은 훠이훠이 잘도 흘러저 잎새들도 머잖아 낙엽인 것을 – 정연복 “인생” 이 시는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겪게 되는 슬픔과 변화,…
남호섭 “한여름 소나기”
저 멀리서 올 때는바람에 마른 잎 구르는 소리 같았다 옆집 마당에 왔을 때는급하게 달리는 수십 마리말발굽 소리 같았다. 우리 집 마당에 닥쳐서는하늘까지 컴컴해지고,하늘이 마른 땅에 대고큰 북을 치는 소리가 들렸다. 빨래 걷을 틈도 주지 않고금세 또 옆집으로 옮겨 가더니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이 시는 한여름 소나기의 발걸음을 청각으로 읽는 느낌이다.먼…
홍관희 “사는 법”
살다가사는 법이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길을 멈춰 선 채 달리 사는 법이 있을까 하여다른 길 위에 마음을 디뎌 보노라면 그 길을 가는 사람들도 더러는길을 멈춰 선 채주름 깊은 세월을 어루만지며 내가 지나온 길 위에마음을 디뎌 보기도 하더라 마음은 그리 하더라 이 시는 삶의 길 위에서 마주하는 ‘멈춤’의 순간, ‘내가 잘못된 길을 가는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