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고 깊은 밤에 용혜원 모든 소리마저 잠들어버린 깊고 깊은 밤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늘어져 잠들지 못한다 멀리 떨어져 있는 그대 얼굴은 자꾸만 내 가슴속을 파고든다 그대 생각 하나하나를 촛불처럼 밝혀두고 싶다 그대가 멀리 있는 밤은 더 깊고 어둡다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밤마다 나를 찾아오는 이유는 무엇이냐 지금도 사방에서 그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시 모음
박준 “앞으로 나란히”
앞으로 나란히 박준 허름한 겨울을 기록하는 대신 작은 틈을 내며 살았지 우리는 후회에도 순서가 있어서 한번 두번 세번 다시 한번 두번 세번 오늘 길어진 네 그림자가 어제 내가 그리워한 것에 닿아 다시 나란해지는 서로의 앞 Image from Pixabay 이 시는 마치 겨울 끝자락에 서 있는 기분이 든다. 바람은 차갑고 풍경은 허름하지만, 그 속에서도...
박세현 “너무 괜찮다”
너무 괜찮다 박세현 너무 괜찮다 자고 일어나면 다 괜찮다 어젯밤 불던 바람소리도 바람을 긋고 간 빗소리도 괜찮다 보통 이상인 감정도 보통에 미달한 기분도 괜찮다 자고 일어나면 정말 괜찮다 웃어도 괜찮고 울어도 괜찮다 웃지 않아도 괜찮고 울지 않아도 괜찮다 유리창에 몸을 밀어 넣은 빗방울이 벗은 소리만으로 내게 오던 그 시간 반쯤 비운 컵라면을 밀어놓고...
고영민 “여름의 일”
여름의 일 고영민 나무 아래 앉아 울음을 퍼 담았지 시퍼렇게 질린 매미의 울음을 몸에 담고 또 담았지 이렇게 모아두어야 한결 요긴하게 울음을 꺼내 쓰지 어제는 안부가 닿지 않은 그대 생각에 한밤중 일어나 앉아 숨죽여 울었지 앞으로 울 일이 어디 하나, 둘일까 꾹꾹 울음을 눌러 담았지 아껴 울어야지 울어야 할 때는 일껏 섧게 오래 울어야지 Image...
조병화 “무더운 여름밤”
무더운 여름밤 조병화 무더운 여름밤 밤에 익은 애인들이 물가에 모여서 길수록 외로워지는 긴 이야기들을 하다간…… 밤이 깊어 장미들이 잠들어버린 비탈진 길을 돌아들 간다. 마침내 먼 하늘에 눈부신 작은 별들은 잊어버린 사람들의 눈 무수한 눈알들처럼 마음에 쏟아지고 나의 애인들은 사랑보다 눈물을 준다. 내일이 오면 그날이 오면 우리 서로 이야기 못한 그...
정연복 “인생”
인생 정연복 어차피 살아야 할 인생이라면 눈물 같은 소주를 마시며 잠시 슬픔과 벗할지언정 긴 한숨은 토하지 않기로 하자 아롱아롱 꽃잎 지고서도 참 의연한 모습의 저 나무들의 잎새들처럼 푸른빛 마음으로 살기로 하자 세월은 훠이훠이 잘도 흘러 저 잎새들도 머잖아 낙엽인 것을 Image from Pixabay 이 시는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겪게 되는 슬픔과...
남호섭 “한여름 소나기”
한여름 소나기 남호섭 저 멀리서 올 때는 바람에 마른 잎 구르는 소리 같았다 옆집 마당에 왔을 때는 급하게 달리는 수십 마리 말발굽 소리 같았다. 우리 집 마당에 닥쳐서는 하늘까지 컴컴해지고, 하늘이 마른 땅에 대고 큰 북을 치는 소리가 들렸다. 빨래 걷을 틈도 주지 않고 금세 또 옆집으로 옮겨 가더니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Image from...
홍관희 “사는 법”
사는 법 홍관희 살다가 사는 법이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길을 멈춰 선 채 달리 사는 법이 있을까 하여 다른 길 위에 마음을 디뎌 보노라면 그 길을 가는 사람들도 더러는 길을 멈춰 선 채 주름 깊은 세월을 어루만지며 내가 지나온 길 위에 마음을 디뎌 보기도 하더라 마음은 그리 하더라 Image from Pixabay 이 시는 삶의 길 위에서 마주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