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미옥 “조율”

2025년 09월 10일

조율

안미옥

이 줄은 누구의 것일까 유리문을 열면 흰 눈이 쌓여 있었다 눈의 처음이 늘 하얗다는 것이 말할 수 없는 참혹처럼 ‘무너지게 될 거야’ 누군가 할 말을 ‘무뎌지게 될 거야’ 라고 들었다 뭉치가 죽었어 화장 비용이 없어서 아직 방에 같이 있어 멈추려는 숨 때문에 개의 코는 마지막까지 길어졌을 텐데 그런 개를 따뜻한 방 한가운데 놓아두고 저녁을 먹고 있는 사람의 전화 목소리가 마른 웅덩이 같다 겨울이라 땅을 파고 묻을 수도 없어 방에 같이 있어 한겨울의 가장 따뜻한 방 이 줄은 무엇으로 엮은 것일까 체에 걸러도 남는 마음 때문에 구멍을 더 촘촘하게 짜는 사람이 있고 잿더미 속에서도 눈을 뜨고 옆을 보려는 사람이 있다 개는 가장 작은 자세로 엎드려 있다
Image from Pixabay

안미옥의 시 「조율」은 겨울의 차가운 풍경 속에서 죽음을 맞이한 반려견과 그 곁에 사랑의 대상을 잃고 상실감 속에 웅크리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떠오른다. 흰 눈, 따뜻한 방, 마지막까지 길어진 개의 코 같은 이미지가 겹쳐지면서,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순간이 고요하게 펼쳐진다.

시 속의 ‘줄’과 ‘조율’은 단순한 끈이 아니라 마음을 이어주고 다잡는 매개로 읽힌다. 슬픔이 흩어지지 않도록, 무너지는 감정을 다시 묶어내는 마음의 도구가 줄이고, 조율은 악기의 음을 맞추듯, 상실의 혼란 속에서 마음의 균형을 잡아내려는 몸부림의 표현이라고 생각된다.

“‘무너지게 될 거야’ 누군가 할 말을 / ‘무뎌지게 될 거야’라고 들었다”라는 구절은 상실 앞에서 화자의 심정적 희망을 표현한 것 같다. 처음에는 삶이 무너질 듯한 충격이 몰려오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것이 무뎌짐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믿어지지 않는 현실에서 그 바뀌는 시간이 지금 이 순간이기를 바라는 마음.
무너짐과 무뎌짐은 서로 다른 감정이고, 결국 상실을 이겨내려면 무너짐에서 빨리 무뎌짐으로 변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체에 걸러도 남는 마음 때문에 / 구멍을 더 촘촘하게 짜는 사람이 있고 / 잿더미 속에서도 / 눈을 뜨고 옆을 보려는 사람이 있다”라는 대목이다. 여기서 체는 마음의 도구이고, 걸러지는 것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 사랑의 잔여물이다. 사랑했던 대상과의 추억과 좋았던 순간은 마음에 오래 남겨두고 더 많이 남기는 것이 좋겠지만, 잿더미처럼 상처만 남은 기억들은 빨리 털어버리고 새로운 관계, 일상으로의 복귀를 위해 그 상실을 빨리 '땅을 파고 묻어'버리고 옆을 바라보고, 끝내 마음을 엮어내어야 한다.

이 시는 단순히 반려견의 죽음을 넘어, 상실 앞에서 인간이 어떻게 마음을 조율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줄은 상처를 묶는 힘이고, 조율은 무너짐과 무뎌짐 사이에서 다시 삶을 이어가려는 과정이다.

촘촘하게 짜서 남겨 놓을만한 기억과 마음이 많다면 줄로 묶어서 오래 오래 기억해야 할 것이고, 상실과 상처만 주는 마음은 그냥 흘려보내자. 그게 '조율'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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