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치료했던…”

2026년 04월 05일

사랑으로 포장된 병

“Her forlorn and embittered love was identified as a syndrome … De Clerambault.”

“그녀를 치료했던 프랑스 정신과 의사는 그녀의 쓸쓸하고 원통한 사랑에 증후군 진단을 내렸고, 그녀의 병적인 열정에 자기 이름을 붙였다. 드클레랑보.”

- 이언 매큐언(Ian McEwan), "견딜 수 없는 사랑(Enduring Love)"" -

Source: Pixabay

확인된 영문 원문 대목은 “Her forlorn and embittered love was identified as a syndrome by the French psychiatrist who treated her …”이며, 문장은 이어 “De Clerambault.”라고 맺힌다. 이 장면은 이언 매큐언(Ian McEwan)의 장편소설 『견딜 수 없는 사랑』에 실린 문장이다.

소설 안에서 이 문장은 주인공 조 로즈(Joe Rose)가 드 클레랑보 증후군의 고전적 사례를 떠올리는 대목에 놓여 있다. 그는 버킹엄궁 커튼의 움직임을 조지 5세(George V)의 사랑 신호로 믿었던 프랑스 여성을 상기하며, 제드 패리(Jed Parry)의 집착을 이해할 틀로 증후군 이름을 떠올린다.

이 문장은 소설 속에서는 정신의학적 언어처럼 들리지만, 매큐언이 작품 부록에 덧붙인 임상 보고서 형식의 글은 실제 의학 논문이 아니라 허구적 장치였다. 매큐언은 훗날 이 부록을 실제 정신의학 저널에 투고하는 장난까지 시도했고, 자신의 기록 보관 자료에도 그 사실이 남아 있다. 그러므로 이 문장을 읽을 때는 “소설 속 문장”이며, 소설이 빌려 쓰는 정신의학적 권위는 문학적으로 연출된 것이라는 점도 함께 기억해야 한다.

드 클레랑보는 프랑스 정신과 의사 가에탕 가티앙 드 클레랑보(Gaëtan Gatian de Clérambault)를 가리킨다. 그의 이름이 붙은 드 클레랑보 증후군은 오늘날 흔히 에로토마니아(erotomania)라고도 불리며, 타인이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확고한 망상을 핵심으로 하는 증상군으로 설명된다. 이후 연구에서는 이 개념이 1921년의 “열정성 정신병” 논의와 연결되며, 현대 분류에서는 망상장애의 한 형태로 다뤄진다.

이 드 클레랑보 증후군은 사랑을 이상화하지 않고, 사랑이 어떻게 자기 안에서 굳어 병이 되는지를 단 한 번에 보여준다. 외로움은 보통 결핍으로 묘사되지만, 이 문장에서는 결핍이 오래 지속되며 해석의 방식 자체를 오염시킨다. 사랑받고 싶다는 욕망이 현실을 향해 열려 있지 못할 때, 사람은 상대를 보지 못하고 자기 욕망의 반향만 듣게 된다. 그래서 이러한 사랑은 관계가 아니라 독백이고, 열정은 생명력이 아니라 증후군이 된다. 이름이 붙는 순간 감정은 더 이상 순수한 내면이 아니라 관찰과 분류의 대상이 된다.

사회적이고 철학적인 면에서도 이 문장은 사랑이 언제 타자를 향한 개방이 아니라 타자를 점유하려는 인식 체계로 바뀌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상대의 침묵, 거리, 거절조차 모두 암호처럼 읽어내는 순간, 사랑은 상호성의 언어를 잃고 해석 편집증의 언어로 인지된다. 매큐언은 이 지점을 통해 사랑과 망상이 얼마나 가까이 붙어 있는지, 그리고 합리성의 언어가 그것을 설명하려 들 때조차 얼마나 불안정한지 알려준다.

그렇지만 사랑의 상처를 입고 외로운 사랑을 너무 빨리 병리화할 수 도 있다. 현실의 많은 짝사랑, 실연, 집착은 고통스럽지만 모두 정신의학적 증후군은 아니기 때문이다. 병명은 이해를 돕기도 하지만, 때로는 복잡한 삶의 맥락을 지워 버리기도 한다. 따라서 감정의 고통을 낭만으로 포장하지 않고 타인에게 가해지는 침범과 왜곡을 분명히 드러내는 것은 경계해야 하면서, 사랑이 깊다는 사실과 모든 사랑이 정당하다는 사실은 구분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결국 이 문장은 사랑의 비극을 말하면서도, 사랑 그 자체를 찬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랑이 이름을 잃고 타자를 잃고 결국 현실 감각까지 잃어버릴 때, 남는 것은 황홀함이 아니라 고립이라는 점을 말한다. 그래서 이 구절은 낭만적인 문장이라기보다, 낭만이 끝내 닿을 수 있는 어두운 끝을 보여 주는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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