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이라는 감독
Der wirkliche Regisseur unseres Lebens ist der Zufall – ein Regisseur voll der Grausamkeit, der Barmherzigkeit und des bestrickenden Charmes.
우리 인생의 진정한 감독은 우연이다.
잔인함과 자비심과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으로 가득한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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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장은 파스칼 메르시어(Pascal Mercier)의 소설 《리스본행 야간열차(Nachtzug nach Lissabon)》에서 가상의 포르투갈 의사이자 철학적 저술가인 아마데우 드 프라두(Amadeu de Prado)가 남긴 글 《언어의 연금술사(Der Goldschmied der Worte)》속 문장이다. 실제 저자는 물론 파스칼 메르시어이며, 이는 스위스 철학자 페터 비에리(Peter Bieri)가 소설을 쓸 때 사용한 필명이다.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전은경 번역으로 들녁과 비채에서 출간되었다.
이 문장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감독(Regisseur)’이다. 감독은 무대 위에서 직접 연기하지 않는다. 인물을 배치하고, 만남의 순서를 정하고, 장면을 전환하며,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이야기를 다른 방향으로 돌려놓는다. 메르시어는 바로 그 자리에 ‘우연’을 앉힌다. 우리는 삶의 주인공이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계획과 의지로 인생을 만들어 간다고 믿지만, 실제 삶의 방향을 크게 바꾸는 사건 가운데 상당수는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순간에서 시작된다는 뜻이다.
이것은 《리스본행 야간열차》 전체를 압축한 문장이라 생각된다. 라이문트 그레고리우스(Raimund Gregorius)는 오랫동안 정해진 시간표 속에서 살아온 고전문헌학 교사다. 그런데 비 오는 아침 다리 위에서 우연히 한 포르투갈 여인을 만나고, 그녀를 쫒아가다 서점에서 포르투갈 작가의 책을 읽고, 그 책 속 아마데우 드 프라두의 문장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그는 거의 충동적으로 리스본행 열차에 오른다.
그래서 이 문장의 ‘우연’은 단순한 행운이 아니다. 메르시어는 곧바로 우연에게 세 가지 얼굴을 부여한다. ‘잔인함(Grausamkeit)’, ‘자비심(Barmherzigkeit)’, 그리고 ‘사람을 사로잡는 매력(bestrickender Charme)’이다. 우연한 사고가 한 사람의 삶을 무너뜨릴 수도 있고, 우연한 만남이 절망에 빠진 사람을 살려낼 수도 있다. 그리고 결과가 좋든 나쁘든, 우연은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세계로 삶을 열어젖힌다는 점에서 묘한 매력을 갖는다.
여기에는 인간의 자유에 관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삶의 모든 사건을 선택할 수는 없지만, 그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다음 단계로 이어갈지는 어느 정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레고리우스에게 포르투갈 여인을 만난 것과 프라두의 책을 발견한 것은 우연이다. 그러나 책을 읽고 학교를 떠나 리스본행 기차를 타는 것은 그의 선택이다. 우연이 상황을 만들지만, 그 상황에서 걸어가는 사람은 결국 자신이다. 이 점에서 이 문장은 결정론보다는 ‘우연과 자유의 공존’의 문제라고 생각된다.
그렇지만 이 문장을 지나치게 낭만적으로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잔인함'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현실의 불행 가운데에는 개인이 의미를 부여한다고 해서 아름다워지지 않는 것이 있다. 전쟁, 독재, 질병, 사고, 가난처럼 사람에게 가해지는 폭력적인 사건을 ‘우연이라는 매혹적인 감독의 연출’이라고만 부르면 실제 고통을 미화할 위험이 있다. 특히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과거 서사는 살라자르(António de Oliveira Salazar)의 독재와 비밀경찰, 저항운동이라는 정치적 현실을 배경으로 한다. 여기서 많은 사람드이 겪은 고통은 우연이라기보다 권력과 제도가 만들어낸 결과다.
사람은 자신의 인생을 장기 계획처럼 바라보지만,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은 종종 계획표에 있지않은 우연에 영향을 받는다. 만남 하나, 놓친 기차 한 대, 우연히 펼쳐본 책 한 권, 어떤 날 갑자기 들은 한 문장이 한 사람의 계획을 바꾸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우연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체념이 아니다. 오히려 우연히 열린 문을 알아보는 감각과 그 문을 통과할 용기다. 그레고리우스의 여행이 보여주는 것도 바로 그것이다. 우연은 삶의 감독일지 모르지만, 그 감독이 제시한 장면을 살아낼 것인지는 여전히 우리에게 남아 있다.
결국 이 문장은 “모든 것을 우연에 맡기라”는 말이 아니다. 우리가 삶을 완전히 연출할 수 있다는 환상을 내려놓으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게 된다. 계획은 필요하지만 계획만으로 삶은 완성되지 않는다. 뜻밖의 만남과 실패와 발견이 들어오고, 때로는 그것들이 우리가 스스로 선택했던 것보다 훨씬 먼 곳까지 삶을 데려간다. 우연은 잔인하고 자비롭고 매혹적이다. 그러나 그 우연이 건네준 장면에서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는 여전히 우리의 몫이다. 그래서 이 문장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우연’ 자체가 아니라, 우연에 의해 흔들린 뒤에도 다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인간의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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