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현실로 만드는…”

2026년 07월 02일

현실이 되는 세계

That’s money, the substance that makes the world real. There’s something so corrupt and sexy about it..

세상을 현실로 만드는 핵심은 돈이다. 돈에는 무언가 너무나 부도덕하고 섹시한 데가 있다.

- 샐리 루니(Sally Rooney), 노멀피플 199 -

Source: Pixabay

이 문장은 샐리 루니(Sally Rooney)의 소설 노멀 피플(Normal People)에 실린 문장이다. 원문은 “That’s money, the substance that makes the world real. There’s something so corrupt and sexy about it.”이다. 한글판에 나온 “세상을 현실로 만드는 핵심은 돈이다. 돈에는 무언가 너무나 부도덕하고 섹시한 데가 있다.”는 의미상 자연스러운 번역이지만, 원문의 “corrupt”는 단순한 “부도덕”보다 “부패한, 타락한, 도덕적으로 오염된”이라는 감각이 강하다. 그래서 자연스러운 한글 번역은 “그게 바로 돈이다. 세상을 진짜로 만들어 주는 물질이다. 돈에는 어딘가 타락했고, 동시에 매혹적인 데가 있다.”이다.

아일랜드 작가 샐리 루니의 노멀 피플(Normal People)은 2018년 페이버 앤드 페이버(Faber & Faber)에서 출간된 그의 두 번째 장편소설이며,  2018년 부커상(The Booker Prize) 후보작이다. 한글번역본은 2020년 (주)북이십일에서 김희용의 번역으로 출간되었다.

이 문장은 중심인물인 코넬(Connell)이 돈의 힘을 새삼 깨닫는 대목(한글판 199쪽)에서 나온다. 그는 외국 도시, 예술 작품, 지하철, 베를린 장벽의 잔재 같은 것들이 이전에는 어딘가 배경처럼 느껴졌지만, 장학금과 이동의 가능성을 얻은 뒤 그것들이 “진짜 세계”가 되는 경험을 한다. 여기서 돈은 단순한 구매 수단이 아니다. 돈은 세계를 만질 수 있게 만드는 접근권이고, 풍경을 이미지에서 경험으로 바꾸는 통행증이며, 계급의 추상성을 몸의 감각으로 바꾸는 물질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돈을 가치 저장, 가격 표시, 교환 수단으로 설명하는데, 루니의 문장은 그 경제학적 정의를 심리적·계급적 현실로 밀어붙인다.

이 문장의 핵심은 “돈이 현실을 왜곡한다”가 아니라 “돈이 현실을 배분한다”는 데 있다. 돈이 없는 사람에게 세계는 실제로 존재해도 접근할 수 없는 배경처럼 남는다. 박물관, 유럽 도시, 여름 여행, 좋은 대학의 사교 공간, 여유 있는 대화, 실패해도 다시 시도할 수 있는 시간은 모두 누군가에게는 공기처럼 자연스럽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표를 끊어야만 들어갈 수 있는 방이다. 그래서 코넬에게 돈은 더러운 동시에 섹시하다. 더러운 것은 그것이 인간의 존엄과 가능성을 불평등하게 나누기 때문이고, 섹시한 것은 그것이 닫혀 있던 세계를 갑자기 열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돈이 세계를 “진짜로” 만든다고 말하면, 돈이 없는 사람의 경험은 덜 현실적인 것처럼 오해될 수 있다. 가난한 삶도 현실이며, 오히려 세계의 냉혹한 구조를 더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현실이다. 그러나 루니의 문장은 가난을 비현실로 낮추려는 문장이 아니다. 이 문장은 돈 없는 삶이 얼마나 많은 현실로부터 배제되는지를 드러내는 문장이다. 가난한 사람이 세계를 모르는 것이 아니라, 세계가 그에게 자신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점을 말한다.

이 문장은 돈을 혐오하면서도 욕망한다. 그 모순이 정확하다. 사람은 돈이 불평등을 만든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돈이 주는 자유, 이동성, 안전, 선택권을 갈망한다. 돈은 속물적인 대상이지만, 동시에 병원비와 월세와 교육비와 여행과 시간과 품위를 가능하게 한다. 그래서 이 문장은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문장이면서도, 자본주의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솔직한 고백이다.

몇일전(2026년 6월 27일), 가디언(The Guardian)에 “‘I’m missing out’: the cash-strapped UK university students forced to live at home”라는 기사가 올라왔다.  집세와 생활비 때문에 대학 근처에 살지 못하고 멀리 떨어진 집에서 통학하는 학생들의 현실을 다룬 이 기사는 돈이 단지 소비의 문제가 아니라 친구 관계, 네트워크, 커리어 기회, 대학 생활의 밀도를 좌우한다는 점에서 이 문장이 떠 올랐다.

결국 이 문장은 돈을 찬양하지도, 단순히 저주하지도 않는다. 돈이 인간을 속물로 만든다는 사실과, 동시에 인간에게 세계를 열어 준다는 사실을 나란히 제시한다. 그래서 이 문장의 여운은 씁쓸하다. 우리는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말하고 싶지만, 돈이 없을 때 그 중요한 것들조차 자주 멀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 문장은 그 모순을 피하지 않고, 돈의 차갑고도 매혹적인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관련 글

결점을 덮는 선한 행동

불평보다 먼저 오는 선함 The task of life is to show goodness to others, not to complain about their failings. 우리가 살면서 꼭 해야 하는 일은 타인의 결점에 대해서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 선함을 보여주는...

더 보기...

오해가 사람을 가두는 순간

오해가 사람을 가두는 순간 사람을 불행에 빠뜨리는 것은 사악함과 음모만이 아니었다. 혼동과 오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들 역시 우리 자신과 마찬가지로 살아 있는 똑같은 존재라는 단순한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불행을 부른다. - 이언 매큐언(Ian McEwan), 속죄...

더 보기...

“예술가의 자유로운 영혼을…”

소명과 책임 사이 He didn’t doubt the calling was high, but bad behaviour was not part of it. 예술가의 자유로운 영혼을 담보로 모든 책임을 벗어버릴 수도 있었지만, 그런 식의 오만은 질색이었다. (중략) 그 역시 예술의...

더 보기...
댓글 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