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재종 “첫사랑”

2026년 02월 03일

첫사랑

고재종

흔들리는 나뭇가지에 꽃 한번 피우려고 눈은 얼마나 많은 도전을 멈추지 않았으랴 싸그락 싸그락 두드려 보았겠지 난분분 난분분 춤추었겠지 미끄러지고 미끄러지길 수백 번, 바람 한 자락 불면 휙 날아갈 사랑을 위하여 햇솜 같은 마음을 다 퍼부어 준 다음에야 마침내 피워낸 저 황홀을 보아라 봄이면 가지는 그 한 번 덴 자리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상처를 터트린다.
Image from Pixabay

고재종 시인의 '첫사랑'은 추운 겨울 나뭇가지 위에 쌓이는 눈꽃을 통해 사랑의 결실이 얼마나 치열한 노력 끝에 얻어지는지를 알려주는 시다. 흔들리는 가지 위에 눈꽃 한 송이를 피우기 위해 눈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없이 미끄러지고 다시 도전했을 과정을 '싸그락 싸그락', '난분분 난분분' 같은 생동감 넘치는 언어로 묘사한 대목이 참으로 인상적이다.

바람 한 점에도 쉽게 날아갈지 모를 위태로운 사랑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쏟아붓는 눈의 모습은 헌신적인 사랑 그 자체다. 그렇게 마침내 피워낸 '황홀'이 겨울의 끝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봄날 꽃망울이라는 '가장 아름다운 상처'로 다시 태어난다는 역설적인 표현은 깊은 감동을 준다. 아픔을 통과한 뒤에야 비로소 진정한 아름다움이 피어난다는 시인의 통찰이 우리의 가슴에 깊이 다가온다.

계속되는 강추위 속에서 나뭇가지에 얼어있는 작은 눈꽃을 다시 바라본다.

관련 글

도종환 “인연”

인연 도종환 너와 내가 떠도는 마음이었을 때 풀씨 하나로 만나 뿌린 듯 꽃들을 이 들에 피웠다 아름답던 시절은 짧고 떠돌던 시절의 넓은 바람과 하늘 못 잊어 너 먼저 내 곁을 떠나기 시작했고 나 또한 너 아닌 곳을 오래 헤매었다 세월이 흐르고 나도 가없이 그렇게 흐르다 옛적 만나던...

더 보기...

정유찬 “살아있는 날엔”

살아있는 날엔 정유찬, 「행복한 여운」 사랑은 표현하지 않으면 환상이고 슬퍼도 울 수 없으면 고통이며 만남이 없는 그리움은 외로움일 뿐 표현되지 못한 감정은 아쉬운 아픔이 되고 행동이 없는 생각은 허무한 망상이 된다. 숨 쉬지 않는 사람을 어찌 살았다 하며 불지 않는 바람을 어찌...

더 보기...

공석진 “이별이 슬픔에게”

이별이 슬픔에게 공석진 이별이 슬픔에게 말하네 울지 마라 울지 마라 헤어짐은 절망이 아니다 차오르는 슬픔아 차라리 날선 시선으로 울컥울컥 심장을 찔러다오 무력한 자존심이 바닥까지 비워지면 흐뭇하게 가슴을 내어주마 속절없는 상처야 단단히 아물어라 다가올 그리움 아프지 않게 Image...

더 보기...
댓글 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