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림 “사랑이 올 때”

2026년 02월 10일

사랑이 올 때

신현림

그리운 손길은
가랑비 같이 다가오리
흐드러지게 장미가 필 땐
시드는 걸 생각지 않고
술 마실 때
취해 쓰러지는 걸 염려치 않고
사랑이 올 때
떠나는 걸 두려워하지 않으리
봄바람이 온몸 부풀려갈 때
세월 가는 걸 아파하지 않으리
오늘같이 젊은 날, 더 이상 없으리
아무런 기대 없이 맞이하고
아무런 기약 없이 헤어져도
봉숭아 꽃물처럼 기뻐
서로가 서로를 물들여가리
Source: Pixabay

분홍빛 봄바람같은 시.

이 시는 다가올 이별이나 소멸을 미리 걱정하며 현재의 행복을 주저하지 말라고 한다. 보통 우리는 꽃이 피면 질 것을 걱정하고, 술을 마시면서도 다음 날의 숙취를 염려하곤 한다. 하지만 시인은 가랑비처럼 스며드는 그 손길을 아무런 계산 없이 맞이하자고 권한다.

장미가 흐드러지게 피어날 때 시드는 것을 생각지 않는 마음, 사랑이 올 때 떠날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 당당함이 참 매력적이다. '오늘같이 젊은 날은 더 이상 없다'는 구절에서는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이 절실하게 다가온다. 기약 없는 만남과 헤어짐조차 봉숭아 꽃물처럼 서로를 물들이는 기쁨이라고 한다. 사랑을 단순히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영혼에 흔적을 남기는 과정으로 보게 만든다.

차분하게 지금의 것들을 돌아보게 만드는 이 시를 읽고 나니, 나도 장미에게, 술에게, 그리고 누군가에게 물들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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