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순 “나비가 앉았던 자리”

2025년 09월 30일

나비가 앉았던 자리

한옥순

이것도 사랑이라고 꽃이 피는구나
이것도 이별이라고 꽃이 지는구나
이것도 인연이라고 흔적이 남는구나
잠시 머무른 자리가 참 고요하구나.
Image from Pixabay

이 짧은 시는 사랑의 생애에 대해 노래하고 있다. 사랑은 꽃이 피는 순간처럼 시작된다. 설렘과 기쁨이 한꺼번에 몰려오고, 그 향기는 잠시 세상을 환하게 물들인다.

그러나 꽃이 지듯 이별이 찾아오면 마음은 허공에 흩날리는 꽃잎처럼 무너진다. 그 자리에 남는 건 상실의 흔적이지만, 동시에 그것이 인연이었다는 증거가 된다. 시인은 사랑과 이별을 단순한 감정의 소모가 아니라, 삶의 자취로 바라본다.

“잠시 머무른 자리가 참 고요하구나”라는 마지막 구절은 상처 뒤에 찾아오는 정적을 담담히 보여준다. 고통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시간은 그 고통을 부드럽게 감싸며 마음에 고요를 남긴다. 마치 나비가 앉았다 날아간 자리처럼, 사랑과 이별은 덧없지만 그 자취는 오래도록 우리 안에 남아 삶의 일부가 된다.

이 시를 읽다 보면, 누구나 마음속에 품고 있는 지나간 사랑을 떠올리게 된다. 아프게 지워진 기억일수록 더 선명한 흔적을 남긴다. 하지만 그 흔적은 결국 다시 피어날 다음 꽃들을 기다리게 한다.

관련 글

최옥 “너의 의미”

너의 의미 최옥 흐르는 물 위에도 스쳐가는 바람에게도 너는 지워지지 않는 발자국을 남긴다 한때는 니가 있어 아무도 볼 수 없는 걸 나는 볼 수 있었지 이제는 니가 없어 누구나 볼 수 있는 걸 나는 볼 수가 없다 내 삶보다 더 많이 너를 사랑한 적은 없지만 너보다 더 많이 삶을 사랑한...

더 보기...

고정희 “지울 수 없는 얼굴”

지울 수 없는 얼굴 고정희 냉정한 당신이라고 썼다가 지우고 얼음 같은 당신이라고 썼다가 지우고 불 같은 당신이라고 썼다가 지우고 무심한 당신이라고 썼다가 지우고 징그러운 당신이라고 썼다가 지우고 그윽한 당신이라고 썼다가 지우고 내 영혼의 요람 같은 당신이라고 썼다가 지우고 샘솟는...

더 보기...

서덕준 “아침의 단막극”

아침의 단막극 서덕준 동쪽에서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과 흔들리는 들풀과 어귀의 꽃잎들이 모두 네게로 불어오면 좋겠다 아침 안개는 너의 가는 길에 은빛 카펫이 되고 새의 지저귐은 너를 깨우는 자그마한 연주가 되면 좋겠다 달이 잠시 무대의 뒤로 사라지고 화려한 단막극이 시작되듯 쏟아지는...

더 보기...
댓글 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