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하  “이슬 처럼”

2025년 09월 27일

이슬 처럼

황선하

길가 풀잎에 맺힌 이슬처럼 살고 싶다 수없이 밟히우는 자의 멍든 아픔 때문에 밤을 지새우고도, 아침 햇살에 천진스레 반짝거리는 이슬처럼 살고 싶다. 한숨과 노여움은 스치는 바람으로 다독거리고, 용서하며 사랑하며 감사하며, 욕심 없이 한 세상 살다가 죽음도 크나큰 은혜로 받아들여, 흔적 없이 증발하는 이슬처럼 가고 싶다.
Image from Pixabay

황선하의 "이슬처럼"은 분명 맑고 순수한 이미지를 담고 있다. 이슬은 깨끗함과 순결함을 상징하며, 시인은 그 투명한 존재를 삶의 태도와 죽음의 수용으로 연결한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과 비유는 다소 진부하게 느껴진다. 이슬의 비유는 오래전부터 인생의 덧없음을 설명하는 상징으로 자주 사용되어 왔다. 그 때문에 새로움보다는 익숙함, 그리고 때로는 지나치게 단순화된 인생관처럼 다가온다. 삶을 이슬처럼 살고 싶다는 소망은 겸허하고 순수해서 아름답지만, 동시에 인간의 경험과 감정을 너무 순간적이고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으로만 규정하는 듯하다. 그 안에는 고통을 극복하는 의지나 존재의 지속성을 바라보는 눈길보다는, 다만 덧없음에 순응하는 수동적 태도가 강조되는 듯 하다.

이 시를 읽으면 이슬의 순결함을 닮고 싶다는 바람이 따뜻하게 다가오면서도, 한편으로는 삶이 더 깊고 복합적인 의미를 지닌다는 사실을 놓친 듯한 아쉬움이 남는다. 인간의 삶은 단순히 증발해 사라지는 흔적 없는 순간만은 아니다. 때로는 상처가 흔적이 되고, 사랑이 흔적이 되며, 용서와 감사가 또 다른 이의 기억 속에 남는다. 그렇기에 인생을 이슬로만 환원할 때, 삶의 연속성과 의미가 지나치게 약화되는 것 같다.

결국 이 시는 ‘순결하고 은혜로운 소멸’을 아름답게 노래하지만, 다소 무력하고 순간적인 삶의 초상으로 비쳐진다. 그래서 읽고 난 뒤 남는 감정은 청아한 울림과 함께, 인생을 보다 풍성하고 지속적인 의미로 붙잡고 싶은 아쉬움이다.

나만의 삐딱한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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