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동 “단풍나무”

2025년 11월 08일

단풍나무

옷을 벗는 것이다
푸르고 단정하던 껍데기를
벗어 던지는 것이다

여름 날
숨막히게 내리 쪼이던
햇살 앞에서도 당당했고
온 몸에 퍼부어 대던
굵은 물줄기에도
한 점 흐트러짐 없던 푸르름

바위틈에 바람이 일고
흰 눈발 펄펄 하늘로 가는 날에도
담담하게 서있으려니 했는데

훌훌 옷을 벗는 것이다 저렇게
벗어 던지면 더 아름다운 것을
기어이 보여주는 것이다

– 김승동

이 시는 계절이 바뀌는 순간의 단풍나무를 통해 ‘변화’와 ‘내려놓음’을 이야기하는 시다. 시의 첫 구절인 “옷을 벗는 것이다”는 단순히 잎이 떨어지는 장면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자연스럽게 변화를 받아들이는 용기가 담겨 있다.

단풍나무는 여름 내내 햇빛과 비를 견디며 푸른 잎을 지켜온 존재로 그려진다. “햇살 앞에서도 당당했고”라는 구절처럼, 늘 한결같고 자신감 있게 서 있던 나무다. 하지만 계절이 바뀌자, 그 단단하던 잎을 어쩔 수 없이 벗어던지고 시간의 흐름에 순응한다. 이 모습은 마치 오랜 시간 지켜온 모습을 내려놓고 새로운 계절을 맞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시의 후반부에서 “훌훌 옷을 벗는 것이다 저렇게 / 벗어 던지면 더 아름다운 것을”이라는 표현은 특히 인상적이다. 단풍잎이 떨어지는 모습을 단순한 ‘끝’이 아니라, 오히려 더 아름다운 순간으로 바라본다. 나무는 잎을 버리지만, 그 순간 오히려 가장 빛난다. 이것은 삶에서도 우리가 무언가를 내려놓을 때 비로소 드러나는 진짜 아름다움이 있다는 뜻처럼 느껴진다.

이 시를 읽고 있으면, 가을에 물드는 단풍이 단순히 색이 변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를 정리하고 새로운 계절을 준비하는 과정처럼 보인다. 그래서 이 시는 ‘끝’에 대한 두려움보다 ‘변화’를 받아들이는 태도를 따뜻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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