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과 시
나해철
봄날에 시가 씌어지기나 하나
목련이 마당가에서 우윳빛 육체를 다 펼쳐 보이고
개나리가 담 위에서 제 마음을 다 늘어뜨리고
진달래가 언덕마다 썼으나 못 부친 편지처럼 피어있는데
시가 라일락 곁에서 햇빛에 섞이어 눈부신데
종이 위에 시를 써서 무엇해
봄날에 씌어진 게 시이기는 하나 뭐
나해철 시인의 <봄날과 시>를 읽으며, 진정한 시는 종이 위가 아니라 이미 우리 곁에 가까이 와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시인은 봄날에 시를 써서 무엇하느냐고 짐짓 토라진듯 묻지만, 그 질문 자체가 가장 아름다운 봄날의 가장 시적 순간을 포착해낸다. 마당의 목련이 화려함을 펼치고, 담장 위 개나리가 마음을 늘어뜨리는 풍경 속에서 인간의 아름다운 언어적 표현인 시는 이미 무의미해진다.
언덕마다 핀 진달래를 '썼으나 못 부친 편지'에 비유한 대목에서는 이미 잘 쓰여지 자연의 시는 자랑할만한 것도 아닌 당연한 것이다. 굳지 부칠 필요도 없는 예쁜 꽃잎이 자연스럽게 붉게 타오르는 장면은 많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어떤 시인의 시보다 강렬하다. 라일락 향기가 햇빛에 섞여 눈부시게 빛나는 찰나, 시인은 펜을 내려놓고 그 찬란한 현상 자체를 '시'라고 한다. 결국 종이 위에 적힌 글자보다, 눈앞에 펼쳐진 봄의 생동감을 온몸으로 느끼는 것이야말로 이 계절을 가장 시적으로 보내는 방법임을 알려준다. 역설적으로 봄날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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