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하림 “시간의 잠”

2026년 04월 07일

시간의 잠

최하림


비 오는 날 시냇가 찻집에서 차 마시며 머언 사람의 얼굴 천천히 그리고 있을 때 나는 잠들리라 잠들면서 떨어지는 빗소리를 아련히 들으리라 시간들이 문을 밀고 또 밀고 사라져가는 저편 언덕으로 연둣빛 새가 날고 비 온다고 비 온다고 젊은 사람들이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걸어가는 그렇게도 어여쁜 걸음으로 오오 어여쁜 걸음으로 걸어가는, 세계여.
Image : Pixabay

비 오는 날, 시냇가 찻집에 앉아 따뜻한 차 한 잔을 앞에 둔 풍경이 눈앞에 선하게 그려진다.

머릿속으로 누군가의 얼굴을 천천히 그리다 스르르 잠에 빠져드는 그 순간이 얼마나 달콤할까 싶다. 빗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시간의 흐름조차 잊은 채 꿈결 같은 평화를 누리는 모습이 참 부럽다. 시인은 그 고요한 쉼 속에서 오히려 생동감 넘치는 바깥세상을 발견한다.

언덕을 날아가는 연둣빛 새와 빗속을 걷는 청춘들의 설렘 가득한 발걸음은, 잠시 멈춰 선 화자의 시선에 투영되어 찬란한 아름다움으로 남는다. 멈춘 듯 흐르는 시간 속에서 세계를 향해 '어여쁘다'고 나직이 읊조리는 그 마음이 참으로 다정하고 따스하다. 일상의 소란을 잠재우고 내면의 평화를 찾아가는 이 짧은 여행이 우리에게도 기분 좋은 위로를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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