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가 사람을 가두는 순간
사람을 불행에 빠뜨리는 것은 사악함과 음모만이 아니었다.
혼동과 오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들 역시 우리 자신과 마찬가지로 살아 있는 똑같은 존재라는 단순한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불행을 부른다.
이 문장의 출처는 이언 매큐언(Ian McEwan)의 소설 『속죄(Atonement)』다. 『속죄』는 2001년에 출간된 영국 소설이며, 부커상(Booker Prize) 2001년 후보작이었다. 부커상(The Booker Prizes) 공식 페이지는 이 작품을 “한 소녀의 상상력이 파괴적 결과를 낳는 메타픽션”으로 소개하고, 펭귄 랜덤하우스(Penguin Random House)는 이 작품을 수치심, 용서, 면죄의 어려움을 다룬 소설로 설명한다. .
인간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노골적인 악의만이 아니다. 누군가의 나쁜 의도, 계획된 배신, 음모가 비극을 만드는 경우도 있지만, 더 자주 사람을 망치는 것은 잘못 본 것, 잘못 들은 것, 성급히 해석한 것, 자기 감정의 틀로 타인을 판단한 것이다. 『속죄』에서 브라이어니 탤리스(Briony Tallis)는 자신이 본 장면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자신만의 이야기로 구성한다. 문제는 그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라는 데 있다. 더 큰 문제는 그녀가 타인의 내면을 자기 이야기의 재료로 삼는 순간, 타인은 더 이상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상상 속 인물이 된다는 데 있다.
이 문장이 인상적인 이유는 “타인도 나만큼 실제적이다”라는 가장 단순한 사실이 실은 가장 어려운 윤리라는 점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자기 고통만은 선명하게 느끼지만, 타인의 고통은 추론해야 한다. 내 수치심은 몸에 닿지만, 타인의 수치심은 언어와 표정과 침묵을 통해서만 겨우 다가온다. 그래서 우리는 쉽게 타인을 단순화한다. 착한 사람, 나쁜 사람, 위험한 사람, 무관한 사람, 귀찮은 사람이라는 이름을 붙이면 마음이 편해진다. 그러나 그렇게 붙인 이름이 타인의 복잡한 생을 지워버릴 때, 오해는 단순한 착각을 넘어 폭력이 된다.
그렇다고 모든 불행을 오해와 상상력의 실패로만 설명할 수 있을까? 현실에서는 실제로 의도적인 악의, 구조적 폭력, 권력의 남용, 계급과 성별의 불평등, 법과 제도의 실패로 인한 불행이 존재한다. 어떤 비극은 단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누군가가 이해하고도 외면했기 때문에 발생한다. 『속죄』에서도 브라이어니의 오해만이 문제는 아니다. 계급적 편견, 성적 통제, 가족 내부의 침묵, 로비 터너(Robbie Turner)를 취약하게 만든 사회적 위치가 함께 작용한다.
그러나 우리는 악을 처벌하는 제도만으로는 인간의 비극을 충분히 막을 수 없다. 많은 비극은 법정에 이르기 전, 이미 일상의 시선 속에서 시작된다. 누군가를 “그럴 만한 사람”으로 단정하는 순간, 우리는 그 사람의 실제성을 묻어버린다. 이언 매큐언이 이 문장을 통해 말하는 것은 착하게 살라는 단순한 교훈이 아니라, 타인을 이야기 속 인물로 축소하지 말라는 문학적 윤리다.
결국 이 문장은 불행의 원인을 인간 바깥의 거대한 악에서 먼저 찾지 말고, 오히려 아주 가까운 곳, 곧 내가 본 것을 사실이라고 믿는 습관, 내가 이해한 것을 진실이라고 단정하는 마음, 타인의 생을 내 이야기의 부속물로 만드는 태도를 돌아보라는 뜻이리라. 우리는 대개 악인이 아니어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그리고 때로는 선의와 확신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오해의 얼굴이 될 수도 있다.
실제 사건에도 우리는 이와 관련된 내용을 찾을 수 있다. 에이피뉴스(AP News)의 2023년 12월 11일 기사는, 마빈 헤인스(Marvin Haynes)가 10대 때 살인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거의 20년을 복역한 뒤, 목격자 증거의 신뢰성 문제로 석방되었다. 이 기사는 오해와 잘못된 식별이 한 사람의 생 전체를 무너뜨릴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가디언(The Guardian)의 2025년 5월 13일자 기사이며, 피터 설리번(Peter Sullivan)이 새 DNA 증거로 38년 만에 살인 유죄 판결을 뒤집은 사건이 보도되었다. 이 기사는 한 번 굳어진 판단이 얼마나 오래 인간을 가둘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이노센스 프로젝트(Innocence Project)의 2020년 4월 15일자 글도 이와 비슷한다. 목격자 오인이 DNA로 뒤집힌 오판 사건들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을 알려주고 있다.
댓글 0개